대외적으로 중국의 올해 타율은 꽤 좋은 편이다. 연초에 생성형 인공지능(AI) 딥시크로 세계를 뒤흔들더니 미국과 제대로 맞붙은 무역전쟁에서도 비교적 선방했다. 예측 불가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맞서 나름의 전략으로 페이스를 잃지 않았다.
세계 최초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마라톤에 이어 다음달 올림픽까지 연다. 제2의 스마트폰으로 불리는 휴머노이드 시장을 기술력·화제성 측면에서 모두 주도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중국 내부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청년 실업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확산하고, “코로나 팬데믹 때보다 더하다”는 자영업자들의 하소연이 넘쳐나고 있다.
현실 진단은 애써 외면
지금 중국 내부 상황은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전조 현상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AI, 전기차 등 화려한 첨단기술 향연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올해 중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글로벌 금융위기인 2009년(-0.72%) 후 16년 만에 최저인 0%로 주저앉을 전망이다. 도매 물가인 생산자물가지수(PPI)는 32개월 연속 하락세를 띠면서 약 2년 만에 최대 하락폭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 내에서 디플레이션은 여전히 금기어다. 각종 경제정책 발표나 기자회견 때 언급조차 막혀 있다. 부진한 경제 데이터는 무역전쟁 등 외부 탓으로 돌린다. 오히려 중국 정부 일각에선 “가격이 떨어지면 좋은 것 아니냐”는 말이 들린다. 수출 경쟁력을 위해 특정 산업에선 디플레이션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모습도 보인다.
사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인한 체제 혼란만 겪은 중국 정부는 디플레이션과 싸워본 경험이 없다. 디플레이션이 무서운 건 빠르게 경제를 좀먹는 데 있다. 소비자들은 제품·서비스 가격이 더 떨어질 것으로 믿고 구매를 미룬다. 기업의 매출은 줄고 수익도 악화된다. 어쩔 수 없이 기업은 근로자 임금과 고용을 줄이고 투자까지 축소한다. 쓸 돈이 없어진 소비자들은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물가는 더 떨어진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경제는 심리·타이밍
하지만 중국 정부가 최근 내놓은 경제정책은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무역전쟁이 야기한 수출 타격을 상쇄하기 위해 재고를 내수로 돌리고 있다. 과잉 투자, 과잉 공급을 해소하는 게 아니라 소비심리를 더 위축시키는 악수를 두고 있는 셈이다.
불안해하는 건 교역국이다. 특히 ‘잃어버린 30년’으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른 일본은 끊임없이 중국 경제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 최고 지도부가 디플레이션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어느 순간 중국이 다시 밖으로 눈을 돌려 디플레이션 수출이 본격화하면 결코 중국 내부의 일로만 끝나지 않을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에 필요한 건 성장 모델의 구조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구조 개혁이다. 서비스 인프라 투자와 사회보장 제도 강화 등으로 소비 기반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뼈아프지만 냉철한 경제 현실 진단이 우선이다. 그래야 그에 걸맞은 처방이 나온다. 흉흉하게 떠도는 ‘체제 위기설’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체제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시작은 따져 보면 결국은 경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