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에레즈 국경 이스라엘 측 검문소에서 전례 없는 여성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테러범은 하마스 조직원 림 리야시로, 두 아이의 엄마였으며 남편 또한 하마스 요원이었다. 그녀가 자살폭탄 테러에 투입된 데는 숨겨진 사연이 있었다. 사실 그녀는 하마스 고위 간부와 불륜을 저지르다 들통나 목숨을 위협받는 처지에 놓였다. 이에 하마스 측은 ‘명예 회복’을 위한 자살폭탄 테러를 제안했고, 그녀가 이를 받아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리야시는 최초의 여성 자살폭탄 테러를 통해 국민적 영웅이 됐다. 이 사건 이후 하마스는 상대의 경계심을 무너뜨릴 수 있는 여성들을 자살 테러에 적극 투입했다. 이에 이스라엘이 대응 카드로 꺼내 든 것이 바로 표적살해였다. 엄격한 조건하에 테러 배후 인물이나 관련자들을 직접 제거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든 것이다.
표적살해의 첫 대상은 당시 하마스가 주도한 모든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하마스 최고지도자 셰이크 아메드 야신이었다. 이스라엘은 리야시 자살폭탄 테러 발생 2개월 만인 2004년 3월 모스크에서 새벽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야신을 아파치 헬기 미사일로 사살했다. 이어 야신 사망 후 보복을 선언하며 후임자가 된 압델 아지즈 란티시 역시 표적살해 대상이 됐고, 경호원이던 아들과 함께 미사일 공격을 받고 한 달 만에 사망했다.이스라엘의 이 같은 표적살해 이후 하마스의 자살폭탄 테러는 크게 줄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여성 자살폭탄 테러범 리야시의 불륜 상대였던 하마스 간부가 일련의 자살 테러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정보기관 신베트는 그를 제거하기 위한 암살 공작을 추진했다.
아랍계 이스라엘 여성으로 위장한 신베트 요원이 그에게 접근해 친분을 쌓았다.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 통화로 관계를 이어 가면서 이들은 깊은 사이로 발전했다. 신베트 요원은 두 사람의 교제 1주년을 맞아 고가의 골든돔 사원 모형물을 선물로 보냈는데, 그 안에는 여성 속옷과 향수가 숨겨져 있었다. 신베트는 선물을 받은 그가 여성 요원과 통화하며 모형물 속 물품을 확인하려는 순간 선물로 위장한 폭탄을 원격으로 터뜨려 그를 암살했다.
이스라엘은 대테러 정책의 일환으로 선제적 표적살해를 공식적으로 실행한 최초의 국가다. 표적살해를 두고 ‘정상적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형 집행’이라는 비판이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테러범 처벌이 아닌 특정 형태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표적살해는 목표 인물의 동선을 정밀하게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정보기관의 휴민트(HUMINT·인적 정보) 역량이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이란 지도부를 대상으로 한 표적살해는 이스라엘 휴민트망이 이란 핵심부 내부까지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지를 말해 준다. 이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측근이 모사드 스파이였다’는 영화 같은 뉴스가 나온다 해도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정일천 가톨릭관동대 초빙교수·전 국정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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