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곤 자주파 vs 국무부 동맹파
그랬던 펜타곤의 요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주한미군 4500명 감축설과 방위비 증액 압박, 4성인 주한미군사령관의 계급 격하 검토 등이 현지 언론을 통해 잇따라 보도되고 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한반도 전구(戰區) 통합 등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을 축소하려는 듯한 움직임도 감지된다. “이대로면 제2의 애치슨 라인이 그어질 것”이라는 경고가 워싱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을 향한 메시지도 건조해졌다. 4월 서울에서 진행된 한미일 안보실무회의와 도상 훈련 후 미 국방부가 낸 공동성명은 이례적으로 짧았다. ‘3국은 안보협력의 모멘텀을 유지해 나가기로 약속했다’는 한 줄이 전부다. 고위급 회담은 아니었지만 5년 만에 재개된 훈련을 놓고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내놓은 첫 공동성명이었는데 말이다.불과 두 달 전 미국 국무부가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동 후 낸 공동성명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흔들릴 수 없는 파트너십’ ‘강력한 안보협력’ ‘동맹의 힘 강화’ ‘한국 방어에 대한 미국의 철통같은 약속’ 같은 표현들이 국방부 성명의 10배가 넘는 분량 곳곳에 담겨 있다. 이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국방부 성명을 보면서 워싱턴의 지한파들은 한미동맹 변화의 불길한 전조를 느꼈다고 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초기의 갑작스러운 인사 교체와 인력 감축으로 급속히 약화된 상태로 알려져 있다. NSC가 지휘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책을 끌고 가는 건 펜타곤의 소수 강경파 인사들이다. 그 핵심에는 엘브리지 콜비 정책차관이 있다. 오커스(AUKUS) 회원국인 호주와 맺은 핵잠수함 협정의 재검토,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의 전격 중단 결정도 콜비 차관이 주도했다고 한다. 이런 민감한 결정을 미 의회와도 사전 협의하거나 심지어 통보도 하지 않고 밀어붙였다는 외신들의 보도는 실세 차관인 그의 영향력을 짐작하게 한다.
대중 매파인 콜비 차관은 미국의 군사력을 중국 견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소신이 확고하다. 이를 위해 한반도 유사시 북한의 공격 대응은 한국이 알아서 책임지고 전시작전권도 가져가라는 식이다. 달성이 불가능한 북한 비핵화 대신 군축 협상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도 밝혀왔다. 확장억제 강화에는 회의적이고, 한국의 자체 핵무장에는 열려 있지만 그렇다고 이를 밀어줄 것 같지는 않다. 그가 틀어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국방정책이 하나씩 현실화하면 한국의 안보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콜비 차관 강경책에 동맹 약화 우려시한이 임박한 한미 간 통상 문제가 당장은 시급하지만, 방위비 증액을 비롯한 안보 이슈도 장기적으로는 이와 맞물려 있다. 펜타곤이 새 국방전략(NDS) 구상을 발표할 시점이 9월로 눈앞에 다가와 있기도 하다. NDS의 세부 내용이 확정되기 전에 한국의 입장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방책을 찾아야 한다. 외교적 파장을 우려하는 국무부가 국방부의 독주를 막기 위해 물밑에서 애를 쓰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소위 ‘펜타곤 자주파’에 맞서는 ‘국무부 동맹파’를 통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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