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섭 칼럼]정치권을 향해 꺼내든 서울대생들의 청구서

7 hours ago 1

보수화된 청년층, 국힘도 지지하지 않아
20대 당면과제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극우’ 프레임 안 돼, 복합적 요구 담아내야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여야 모두 6·3 대선 결과에 나타난 청년 세대의 요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진보’가 ‘보수’보다 많은 연령대가 기존 40, 50대에서 60대 초반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여당에선 한때 ‘20년 집권론’까지 나왔다. 하지만 새로 유권자층으로 흡수된 20대의 보수화로 체면을 구기고 있다. 사상 처음 청년 세대가 보수보다 싫어하는 ‘꼰대 진보’가 됐기 때문이다. 야당은 지지층의 고령화로 20대를 흡수하지 못하면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상황을 맞았다.

대선이 빠르게 진행돼 큰 화제가 되진 못했지만 20대의 시대적 요구를 파악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조사가 있다. 서울대 ‘대학신문’이 5월 14∼20일 온라인 방식으로 실시한 ‘2025 서울대 학부생 정치의식 조사’다. 학부 재적생 전체를 모집단으로 1057명이 참여했고(95% 신뢰구간에서 ±3.01% 표본오차), 1985년 이후 열한 번째 조사였다. 올해 학부 재적생 통계를 기준으로 성별·단과대·학번별 가중치를 부여해 분석했다고 한다.

보수화 현상은 분명했다. 전 연령 기준 득표율 49.42%로 최종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은 27.5%에 그친 반면 8.34%를 얻어 3위를 한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35.1%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정당 지지율에서도 개혁신당(21.4%), 더불어민주당(19.7%), 국민의힘(9.4%) 순이었다. 과거 조사와 비교해 보면 자신을 ‘보수’라고 답한 비율이 2007년 40.5%에서 2017년에는 9.4%까지 하락했지만 이번 조사에서 29.1%로 크게 증가했다. 반면 ‘진보’는 2017년 41.8%에서 이번에는 29.0%로 감소했다. 1992년 이래 역대 최저치라고 한다.

반(反)이재명 정서도 상당했다. ‘가장 당선을 원치 않는 후보’를 묻는 설문에서 무려 40%가 이 대통령을 꼽아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30%)보다 비호감도가 높았다. 그러나 김 후보 지지율은 불과 7.7%(최종 득표율 41.15%)여서 ‘국민의힘은 아니다’라는 정서도 분명했다. 한마디로 ‘보수화’는 맞지만 그렇다고 국민의힘을 지지하지도 않는 것이다.

전공별로 보면 인문사회계는 친(親)이재명, 이공계는 반이재명이었다. 간호대·수의과대·약대·의대·치대에서는 이 대통령과 이준석 후보 지지율이 각각 24.5%와 35.3%, 공대·첨단융합학부에서는 18.1%와 47.0%, 농생대·생활대·자연대에서는 26.1%와 43.6%로 이 후보가 이 대통령을 압도했다. 반면 범인문사회계에서는 이 대통령이 이 후보를 크게 앞섰다. 경영대·인문대·사범대·사회대·학부대에서는 이 대통령과 이 후보가 33.6%와 24.9%, 미대·음대에서는 38.9%와 20.1%의 지지율을 각각 보였다.

그럼 20대의 요구는 과연 무엇일까. ‘차기 대통령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를 묻는 설문에서 ‘경제 성장·일자리 창출’이 44.7%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복지 확충·양극화 해소’(14.3%)나 ‘인권 신장’(3.8%) 등 전통적인 진보 이슈나 ‘안보 증진’(2.3%) 등 전통적 보수 이슈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심지어 자신을 ‘진보’라고 답한 응답자들도 ‘복지 확충·양극화 해소’(27.0%) 못지않게 ‘경제 성장·일자리 창출’(24.0%)을 당면과제로 꼽았다.

위기의 20대에게는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매몰됐던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나 ‘김건희 특검’, ‘기본소득’ 등에 매몰됐던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 둘 다 공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20대 남녀 간 정치적 양극화도 경제 성장이 멈춰서며 불거진 소득, 일자리 갈등이 젠더 문제에 대한 입장 대립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 20대의 보수화는 맞지만 그렇다고 일각의 극우 프레임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서울대생 중 ‘탄핵 집회에 참석했다’고 답한 비율은 32.0%에 달했지만 ‘탄핵 반대 집회에 참여했다’고 한 비율은 1.4%에 불과했다. 여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청년 세대를 ‘극우’로 폄훼해선 안 된다.

정치권은 청년 세대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을까. 이재명 정부는 노조위원장 출신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했고 여당은 상법 추가 개정, ‘노란봉투법’ 통과에 매진하고 있다. 주식투자자들이나 민노총 노조원들은 반길 일이나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를 어렵게 만들어 청년 세대 취업난을 심화시킬 수 있다. 반면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는 70대인 김문수 후보가 출마하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신당을 창당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서울대 학부생이 20대 전체를 대표할 순 없겠지만 청년 세대의 시대적 요구가 무엇인지는 분명해 보인다.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담아낼 그릇이 현 정치권에는 보이지 않는다.

한규섭 칼럼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이승재의 무비홀릭

    이승재의 무비홀릭

  • 한규섭 칼럼

    한규섭 칼럼

  • 횡설수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