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화된 청년층, 국힘도 지지하지 않아
20대 당면과제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극우’ 프레임 안 돼, 복합적 요구 담아내야
대선이 빠르게 진행돼 큰 화제가 되진 못했지만 20대의 시대적 요구를 파악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조사가 있다. 서울대 ‘대학신문’이 5월 14∼20일 온라인 방식으로 실시한 ‘2025 서울대 학부생 정치의식 조사’다. 학부 재적생 전체를 모집단으로 1057명이 참여했고(95% 신뢰구간에서 ±3.01% 표본오차), 1985년 이후 열한 번째 조사였다. 올해 학부 재적생 통계를 기준으로 성별·단과대·학번별 가중치를 부여해 분석했다고 한다.
보수화 현상은 분명했다. 전 연령 기준 득표율 49.42%로 최종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은 27.5%에 그친 반면 8.34%를 얻어 3위를 한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35.1%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정당 지지율에서도 개혁신당(21.4%), 더불어민주당(19.7%), 국민의힘(9.4%) 순이었다. 과거 조사와 비교해 보면 자신을 ‘보수’라고 답한 비율이 2007년 40.5%에서 2017년에는 9.4%까지 하락했지만 이번 조사에서 29.1%로 크게 증가했다. 반면 ‘진보’는 2017년 41.8%에서 이번에는 29.0%로 감소했다. 1992년 이래 역대 최저치라고 한다.
반(反)이재명 정서도 상당했다. ‘가장 당선을 원치 않는 후보’를 묻는 설문에서 무려 40%가 이 대통령을 꼽아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30%)보다 비호감도가 높았다. 그러나 김 후보 지지율은 불과 7.7%(최종 득표율 41.15%)여서 ‘국민의힘은 아니다’라는 정서도 분명했다. 한마디로 ‘보수화’는 맞지만 그렇다고 국민의힘을 지지하지도 않는 것이다.전공별로 보면 인문사회계는 친(親)이재명, 이공계는 반이재명이었다. 간호대·수의과대·약대·의대·치대에서는 이 대통령과 이준석 후보 지지율이 각각 24.5%와 35.3%, 공대·첨단융합학부에서는 18.1%와 47.0%, 농생대·생활대·자연대에서는 26.1%와 43.6%로 이 후보가 이 대통령을 압도했다. 반면 범인문사회계에서는 이 대통령이 이 후보를 크게 앞섰다. 경영대·인문대·사범대·사회대·학부대에서는 이 대통령과 이 후보가 33.6%와 24.9%, 미대·음대에서는 38.9%와 20.1%의 지지율을 각각 보였다.
그럼 20대의 요구는 과연 무엇일까. ‘차기 대통령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를 묻는 설문에서 ‘경제 성장·일자리 창출’이 44.7%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복지 확충·양극화 해소’(14.3%)나 ‘인권 신장’(3.8%) 등 전통적인 진보 이슈나 ‘안보 증진’(2.3%) 등 전통적 보수 이슈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심지어 자신을 ‘진보’라고 답한 응답자들도 ‘복지 확충·양극화 해소’(27.0%) 못지않게 ‘경제 성장·일자리 창출’(24.0%)을 당면과제로 꼽았다.
위기의 20대에게는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매몰됐던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나 ‘김건희 특검’, ‘기본소득’ 등에 매몰됐던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 둘 다 공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20대 남녀 간 정치적 양극화도 경제 성장이 멈춰서며 불거진 소득, 일자리 갈등이 젠더 문제에 대한 입장 대립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 20대의 보수화는 맞지만 그렇다고 일각의 극우 프레임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서울대생 중 ‘탄핵 집회에 참석했다’고 답한 비율은 32.0%에 달했지만 ‘탄핵 반대 집회에 참여했다’고 한 비율은 1.4%에 불과했다. 여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청년 세대를 ‘극우’로 폄훼해선 안 된다.정치권은 청년 세대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을까. 이재명 정부는 노조위원장 출신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했고 여당은 상법 추가 개정, ‘노란봉투법’ 통과에 매진하고 있다. 주식투자자들이나 민노총 노조원들은 반길 일이나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를 어렵게 만들어 청년 세대 취업난을 심화시킬 수 있다. 반면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는 70대인 김문수 후보가 출마하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신당을 창당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서울대 학부생이 20대 전체를 대표할 순 없겠지만 청년 세대의 시대적 요구가 무엇인지는 분명해 보인다.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담아낼 그릇이 현 정치권에는 보이지 않는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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