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량제 시행 전에는 가정에서 검은색 봉지에 구분 없이 쓰레기를 담아 내놓으면 미화원이 수거해 난지도 등에 매립했다. 그러다 매립장이 포화 상태가 되고 환경 문제가 대두되면서 대안으로 나온 게 쓰레기 종량제였다. 1995년 1월 1일부터 종량제가 시행되자 환경부에는 ‘무슨 쓰레기를 돈 내고 버리냐’는 민원이 빗발쳤다. 무단 투기가 횡행했고, 가짜 종량제 봉투까지 유통됐다. 당시 신문에는 “쓰레기를 내놨더니 내용물은 쏟아놓고 종량제 봉투만 훔쳐갔다”며 황당해하는 독자투고가 실렸다.
▷초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쓰레기 문제를 놔둘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 덕분에 종량제는 금세 정착됐다. 시행 3개월 만에 쓰레기 배출량이 37% 줄었고, 종량제 봉투로 쓰레기를 내놓는 비율은 99%가 됐다. 2013년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 도입 등 후속 조치도 이어졌다. 덕분에 한국은 30년 동안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배가량으로 늘었지만 쓰레기 배출량은 20% 가까이 줄었다. ‘소득이 늘면 쓰레기 배출량이 증가한다’는 국제 상식을 뒤집은 것이다. 환경부는 종량제 시행 후 지금까지 폐기물이 1억6000만∼3억 t 줄고 2억 t이 분리 배출돼 재활용된 것으로 분석한다.
▷쓰레기 종량제는 미국 일본 등에서 일부 지자체가 운영했지만 전국 규모로 도입한 건 한국이 처음이다. 도입 전에는 한국 공무원들이 일본을 찾아 벤치마킹했지만 이후 일본 지자체들이 한국을 참고해 마을 단위에서 가구 단위로 종량제 시스템을 개선했다. 대만도 한국을 참고해 2000년 종량제를 도입했다. 미국과 유럽에선 최근까지 한국을 쓰레기 관리 선진국으로 꼽으며 “우리도 배워야 한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을 시작한 프랑스에서도 ‘한국은 바이오 폐기물 챔피언’이라며 본받을 것을 촉구하는 기사가 실렸다.▷‘버리는 만큼 낸다(Pay As You Throw)’는 종량제 원칙은 지금 보면 당연해 보이지만 국민을 설득하지 못해 도입에 실패하는 곳도 적지 않다. 홍콩의 경우 한국 등을 참고해 종량제를 지난해 도입할 예정이었지만 여론 반발 때문에 무기한 연기한 상태다. 한국의 쓰레기 종량제 30년은 성숙한 시민의식이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범 사례다.
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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