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회복을 위해 하루가 급하다’며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긴급편성한 첫 추가경정예산이 여당 의원들의 ‘쪽지 추경 찬스’로 얼룩졌다. 추경 규모를 31조8000억원으로 부풀리면서 깨알처럼 끼워 넣은 민원용 지역구 예산이 2조원에 달했다. ‘건설 경기를 부양하겠다’며 여당이 막판에 무더기로 끼워 넣은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예산만 1조4000억원으로 집계된다.
여당 강세 지역의 예산 배정이 특히 두드러진다. 호남고속철도 2단계, 광주도시철도, 전남하수도 등 호남권 예산이 대거 증액됐다. 전남 나주 한국에너지공대(한전공대)에도 정부출연금 100억원이 확정됐다. 추경 통과 후 전북(4787억원) 전남(2042억원) 광주(994억원) 등 호남권 지방자치단체는 보도자료를 내고 일제히 추경 확보를 자랑했다. 모두 합치면 7800억원으로 이번 추경 지역구 예산(2조원)의 40%에 육박한다. 반면 가덕도신공항, 영일만대교 등 영남권 국가핵심사업 예산은 전액 삭감 등 대거 칼질됐다.
멀쩡한 국방예산을 깎아 지역 민원 예산을 늘리는 고질적 관행도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최전방 감시초소 성능계량(300억원), 자주 박격포(200억원), 특수작전용 권총(137억원), 아파치 헬기 2차 사업(97억원) 예산이 일거에 날아갔다. 관사 및 간부 숙소(4억5000만원), 정보보호(11억원) 예산 등 지역구 챙기기에 희생된 국방예산이 905억원이다. 군 안팎에선 ‘또 안보 팔아 현금 살포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런 문제투성이 추경을 여당은 야당·정부와의 협의를 사실상 생략한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참전유공자 보훈수당 증액, 소상공인 바우처, 산불 진압 헬기 보완 등 야당의 제안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본 회의도 제1야당을 배제한 채 사실상 단독 의결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우선해 국가재정을 사유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국민 앞에서는 전 정권의 긴축재정 노력을 험한 말로 폄하하면서 대규모 추경을 결정해 놓고, 서로 뒤질세라 지역 이권을 챙기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는 새 정부 들어서도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