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미 전역에 충격을 줬던 어린이 실종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던 60대 조현병 환자가 재심을 받게 됐다.
연방항소법원은 뉴욕주 법원의 1심 판사가 판례에 명백히 반하는 법리 해석을 배심원단에 안내했고 이것이 배심원단이 부당한 예단을 갖게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미 제2연방 항소법원은 21일(현지시간) 살인 및 유괴 혐의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인 페드로 에르난데스(64)가 연방법원에 낸 인신보호영장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인신보호영장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뒤집고 에르난데스를 조건부로 석방해야 한다는 취지로 사건을 1심 연방법원에 돌려보냈다.
연방항소법원 재판부는 에르난데스의 유죄를 결정한 뉴욕주 법원이 합리적인 기간 내에 재심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에르난데스를 석방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에르난데스가 범인으로 지목된 ‘이튼 패츠 실종사건’은 당시 미국 전역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사건이다. 뉴욕 맨해튼 소호에 살던 패츠(실종 당시 6세)는 1979년 5월 25일 아침 집에서 스쿨버스 정류장까지 보호자 없이 혼자 걸어가던 중 실종됐다. 사건 발생 이후 뉴욕경찰과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대대적으로 투입돼 수색과 탐문이 이뤄졌지만, 패츠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실종된 패츠를 찾아달라는 사진이 우유팩에 인쇄되는 등 미 전역에서 패츠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될 정도로 이 사건은 전국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다.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은 1983년 패츠가 사라진 날을 ‘실종 아동의 날’로 지정했다.
그러던 중 경찰은 2012년 에르난데스가 ‘뉴욕에서 아이를 해친 적이 있다’라고 주변에 얘기했다는 에르난데스 처남의 제보를 받고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는 듯했던 패츠 실종 사건의 재수사에 착수했다. 에르난데스는 지능지수(IQ)가 67∼76 사이였고, 패츠 실종 이전에 의사로부터 강박적 사고, 환각 등 진단을 받은 조현병 환자였다. 패츠 실종 당시는 18세였다.
경찰은 새벽 뉴저지주의 에르난데스 집에 들이닥쳐 그를 임의동행한 뒤 강도 높은 심문을 벌였다. 에르난데스는 오랜 심문 끝에 편의점 밖에 서 있는 패츠에게 음료수를 주겠다며 가게 지하실로 유인한 뒤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쓰레기봉투에 넣어 인근 쓰레기 집하구역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빨리 집에 보내달라는 에르난데스를 상대로 자백을 얻어낸 경찰은 이후에야 미란다 원칙을 고지한 뒤 영상 녹화를 시작하면서 에르난데스에게 직전에 한 진술을 다시 말해달라고 했다. 변호인 조력도 없는 상태였다.
뉴욕검찰은 이 자백을 토대로 패츠를 유괴해 살해한 혐의로 에르난데스를 재판에 넘겼고, 별도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그의 자백은 혐의를 입증하는 핵심 증거가 됐다.
2015년 이뤄진 그의 첫 형사재판에서 뉴욕주 법원의 배심원단은 18일간의 긴 숙의 기간에도 불구하고 에르난데스의 유무죄 여부를 합의하지 못했고, 판사는 심리 무효를 선언했다. 당시 배심원 중 한 명이 에르난데스의 자백에 신빙성이 없다는 의견을 끝까지 굽히지 않은 탓이었다.
이후 맨해튼 지방검찰청이 보강 수사를 통해 추가적인 자백을 얻어냈고, 에르난데스는 2017년 뉴욕법원에서 두 번째 재판을 받았다. 배심원단은 이후 에르난데스에게 유죄를 평결했고, 판사는 그에게 징역 25년형을 선고했다.
에르난데스 변호인은 조현병 환자인 그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환각에 의해 자백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뉴욕주 2심 법원에 항소했지만, 2심 법원은 1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이에 변호인은 주 법원 판결에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연방법원에 구제 신청을 냈다.
연방법원 1심은 뉴욕주 판사의 배심원단 설시가 명백히 판례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면서도 그것이 평결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연방항소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뉴욕주 판사의 배심원단 설시가 명백히 판례에 어긋나며 동시에 평결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을 달리했다. 8년전 주 법원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