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미국의 관세 정책과 무역협상 진행 소식에 따라 시장 상황이 급변해서다. 하루 새에 30원 넘게 오르다가도 이튿날 다시 30원 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할 정도로 등락폭이 크다. 최근엔 미·중 무역갈등이 완화되고 한·미 당국이 환율 협상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1400원 밑으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향후에도 미국의 무역정책에 따라 원화 가치가 높은 변동성을 보일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올 연말까지 환율이 1360~1370원대까지 하향 안정화될 것이란 내다봤다.
30원씩 오르내리는 원·달러 환율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부터 변동성이 유독 커졌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한 지난 4일엔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원·달러 환율(오후 3시 30분 기준)이 전일(1467원) 대비 32원90전 하락한 1434원10전에 거래를 마쳤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인 5일엔 원·달러 환율이 33원70전 상승한 1467원80전까지 오르며 전날 하락분을 모두 반납했다.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방침에 대해 중국 정부가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힌 탓에 글로벌 무역전쟁이 본격화할 것이란 공포가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를 밀어올린 결과다. 이후 원·달러 환율은 9일 1484원10전까지 치솟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3월 12일(1496원50전) 이후 약 1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급등하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중순 들어 하락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루 10원 이상의 큰 등락을 반복하면서도 이달 7일엔 1398원에 거래를 마치며 작년 11월 29일(1394원70전) 이후 처음으로 주간 종가가 1400원 밑으로 떨어졌다.
최근 환율이 진정세를 보이는 것은 글로벌 무역갈등이 완화 국면에 접어든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을 포함한 주요 대미 무역흑자국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 부과를 유예하기로 결정했고, 특히 이달엔 중국과 관세를 한시적으로 낮추기로 했다”며 “이후 이어지는 한·미 양자간 무역협상에서 원·달러 환율을 낮추는 방향으로 무역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환율이 1390원대까지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하반기엔 환율 하락세 이어질 것”
전문가들은 글로벌 무역협상 진행 경과 따라 환율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올해 말까지 원·달러 환율이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봤다. 이낙원 농협은행 FX파생전문위원은 “원화 약세의 근본 원인이었던 미·중 무역마찰이 완화됐고, 외환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미국의 관세정책이 6개월 넘도록 케케묵은 재료로 작용해 피로감이 있는 상황”이라며 “관세 이슈가 점차 사그라들면서 올 하반기 원·달러 환율 평균값을 1360~1370원 수준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원화 가치의 과소평가를 이끌었던 정치적 불확실성이 탄핵 심판으로 제거된 데다 미국의 관세 불확실성도 이전보다는 누그러진 게 사실이기 때문에 연말까지 원·달러 환율의 하단을 1360원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중국에 대한 상호관세 부과 유예기간을 90일로 설정됐기 때문에 협상 진행 과정에서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있다”면서도 “다시 원·달러 환율이 올라도 1430원이 한계선”이라고 덧붙였다.
서정훈 연구위원은 “미국의 무역 정책 변화에 따라 달러당 원화 가격이 연말까지 1400원을 기준으로 10~20원씩 오르내리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면서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분쟁이 완화되고 미국과 한국의 무역협상이 진전을 보이면 원·달러 환율이 1350원까지 내려가는 것이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을 고려했을 때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차익 기대하는 환테크는 NO”
전문가들은 환율 상승을 기대한 달러 투자에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이미 원·달러 환율이 낮아지고 있고, 무역협상이 진전을 이루지 못해 원화 가치가 다시 하락하더라도 달러에 투자해 얻을 수 있는 기대차익이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박상현 iM증권 전문위원은 “연말까지 원·달러 환율이 1350원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 정책이 장기화돼 미국 경제가 침체하고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나타나더라도 원·달러 환율은 올해 1450원을 넘기기 어렵다”면서 “환율 상승을 기대하고 달러를 매입했을 때 단기 차익으로 기대할 수 있는 최대 수익률이 5%도 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이낙원 전문위원은 “1450원 안팎의 원·달러 환율은 분명히 오버슈팅된 레벨”이라며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계속 줄고 있어 한·미 무역협상에서 환율을 인위적으로 낮출 현실적 수단이 없다는 지적이 쏟아지면 원·달러 환율이 올 2분기 말께 오를 수 있겠지만, 올라도 1420~1430원 정도로 예상한다”고 했다.
정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