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선 국회의원에 경기지사까지 역임한 정치인. ‘대권 잠룡’으로 언급되던 그에게 여태까진 명함이 필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명함 두 개를 갖고 다닌다. 하나는 국내 마약 퇴치운동을 목적으로 한 사단법인 은구(NGU)의 이사장, 또 하나는 자율주행 기술기업 포니링크의 대표다. 남경필 전 경기지사(이하 남 이사장·사진) 얘기다.
남 이사장은 지난 21일 서울 모처에서 기자와 만나 “마약 중독자들이 완치 후 사회로 복귀해 다른 중독자를 돕는 선순환의 보람을 맛보고 있다”며 “이제 정치를 다시 할 생각이 전혀 없다. 마약 퇴치운동과 스타트업 경영에만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구(NGU)는 ‘Never Give Up’의 약자로, 중독자의 구제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남 이사장은 지난달 27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한국 사회 마약 위기’를 주제로 강연한 일화를 소개했다. 그의 아들이 마약에 중독된 것을 계기로 비영리 단체를 세워 마약과 싸우게 된 이야기가 크게 알려지자 대학 측 초청을 받았다. 남 이사장의 아들은 충남 공주시 국립법무병원(치료감호소)에 수감됐고 오는 9월 말 만기 출소를 앞두고 있다. 1주일에 20분 아들과 스카이프로 화상 면회를 하고 있다고 한다.
남 이사장은 “강연을 들으러 온 학생, 교수 등은 ‘한국은 그래도 서구권에 비해 마약 안전지대 아니냐’고 말했지만, 지난 3년 동안 한국 10대 마약사범 증가율이 50배 늘어났다는 통계를 제시하니 다들 놀라워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지금 당장 바로잡지 않으면 한국이 정말 큰일 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학교 일선에서 마약 관련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남 이사장은 “다음달부터 동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유튜브 등을 통해 내보낼 예정”이라며 “10대에게 호소력 있는 명사나 연예인 섭외도 어느 정도 끝냈다”고 말했다.
그가 정점을 찍고 싶은 목표도 있다. ‘마약청’과 ‘마약 중독치료 전담 병원’ 설립이다. 마약청 설립은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 과장급 공무원이 전담하는 마약 업무를 담당 부처를 설립해 전담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으로, 예방부터 치료 후 사회 복귀까지를 통합 관리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마약 전문 병원은 밑그림을 그려논 단계다. 남 이사장은 “국내 한 대형병원과의 제휴를 완료했고, 곧 병원 설립을 위한 첫 삽을 뜰 것”이라고 말했다.
남 이사장은 회복자들이 다시 마약에 빠져들지 않고 사회에 잘 복귀하는 ‘롤모델’을 많이 만들고, 이들이 마약 퇴치의 선봉에 서는 선순환을 그리고 있다. 한때 마약 중독을 경험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 씨가 대표적이다. 전씨는 경기 성남시 백현동 은구 사무실에 상근 직원으로 주 3회 출근하고 있다. 남 전 지사와 전씨는 교회 목사 소개로 인연을 맺었다. 그는 “현대인의 감정적 결핍과 고립이 마약의 시작”이라며 “자기 안의 공포와 불안을 잊기 위해 마약을 시작하는 만큼 주변에서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마약을 접했다고 자식을 야단치는 것, 저도 해봤죠. 하지만 아이를 닦달하지 않겠다고 제가 먼저 다짐하고 변해야 자식도 변하더라고요.”
글=박종필/사진=강은구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