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7월 한일 정기 각료회의에서 양국은 이 같은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겪던 양국이 이례적으로 한목소리를 낸 외교적 사건이었다. 한일 공동성명에서 미군 주둔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도 처음이었다. 발단은 그해 6월 미국 닉슨 행정부의 ‘주한미군 제7보병사단 철수’ 발표였다. 한국의 베트남전 파병 기여와 당시 박정희 정부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닉슨 행정부는 비용 절감 등을 위해 주한미군 철수를 밀어붙였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한국의 안보 불안에만 그치지 않았다. 주한미군 철수를 동아시아에서 미국 안보 공약의 후퇴로 인식한 일본도 위기 인식을 공유한 것.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당시 일본 총리가 윌리엄 로저스 미 국무장관을 만나 주한미군 철수에 따른 동아시아 ‘안보 공백’ 우려를 전하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이에 대해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저서 ‘적대적 제휴’(문학과지성사)에서 한일에 안보를 제공하는 미국이 ‘고립주의’로 쏠릴 때, 한일 양국이 갖는 안보 불안이 과거사 갈등에도 불구하고 ‘협력’을 낳는다고 분석했다.
그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의 북한은 55년 전에는 갖지 못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한일이 북한 비핵화를 추진함에도 최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핵능력 보유국(nuclear power)’이라 지칭했다. 핵 군축을 대가로 대북제재를 완화하는 ‘스몰 딜’ 가능성을 은연중 시사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탄핵 사태로 정상외교가 막힌 비상 상황에서 이웃 나라 일본의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트럼프 2기 출범을 맞아 안보 위협국인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면서 국방력을 강화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모리야마 히로시 일본 자민당 간사장이 지난달 13∼15일 방중해 6년 만에 중국공산당과 ‘중일 여당 교류협의회’를 열었다. 중국은 정부보다 공산당이 정책 주도권을 쥐고 있어 여당 간 교류의 의미가 작지 않다. 지난해 12월엔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상이 방중해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비자 발급 완화 방침을 밝혔다. 일본은 이시바 총리의 방중과 더불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일도 추진 중이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제이크 설리번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고별 인터뷰에서 “동맹국들이 미국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으로 ‘중국으로 헤지(hedge·위험 회피)를 해야 한다’고 말하게 될까 봐 걱정된다”고 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이 유화책만 쓰는 건 아니다. 일본 방위성은 내년에 소형 자폭용 드론 310대를 도입할 방침을 굳혔다고 산케이신문이 최근 보도했다. 자폭용 드론을 일본 자위대가 보유하는 건 처음이다. 방위성은 드론을 이용해 규슈 남부에서 대만 인근까지 이어진 난세이 제도에서 대응력을 높일 계획이다. 중국의 해양 진출을 견제하고, 양안 전쟁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이 또한 55년 전 일본 사토 정부가 1970년도 국방예산을 전후 최대인 17.7% 늘린 것과 겹친다.
예측 불허의 트럼프 2기를 맞아 중국, 북한의 안보 위협에 맞서 일본과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자체 국방력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김상운 국제부 차장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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