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무엇을 말할까? 음악에 관해 얘기를 나눌 때 주로 감정, 기분, 느낌 등을 말하곤 했던 것을 떠올려 보면, 음악이 감성을 전달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이뿐만은 아니다. 슈만은 진정성을 담아 시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바그너는 거대한 드라마를 펼쳐 보이고자 했다. 한슬리크는 형식과 구조에 음악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설파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 모두 공존할 수 있으며, 또한 그런 음악일수록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복합적인 감흥을 전달한다. 지난 29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5월 정기공연에서 지중배 지휘자와 한경arte필하모닉이 연주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로부터 만든 ‘오페라의 유령’ 관현악 모음곡(앤드루 코티 편곡)과 구스타브 홀스트의 ‘행성’은 이런 이유로 사랑받는 작품들이다.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 관현악 모음곡은 원작 뮤지컬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오르간의 거대한 반음계로 시작해 좌중을 집중시켰다. 뮤지컬의 순서에 따라 주요 음악을 연결한 메들리 형태로 진행됐는데, 유명한 멜로디가 들릴 때면 그 장면의 감정과 극적 이야기가 연상됐다. 그런 만큼 무대에 없는 가수의 노래를 상상으로 더하며 능동적 감상을 경험했다.
한경arte필하모닉은 음악적으로도 금관의 찬란한 음색과 섬세한 하모니, 그리고 심장을 울리는 타악기의 리듬 등으로 각 곡의 뉘앙스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전체의 흐름을 그 자체로 하나의 드라마를 만들었다. 그렇기에 뮤지컬을 알지 못하는 감상자라도 음악에 따라 이야기를 만드는 상상의 드라마 작가로의 확장을 경험했을 것이다.
홀스트의 ‘행성’은 이야기는 없지만 각 곡에 부여된 점성학적 이미지들과 여러 가지 신비한 감성을 뚜렷하게 전달했으며, 이와 함께 음악적 소리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화성’에서는 강력한 발걸음과 밀려드는 음향의 파도에도 정교한 계산과 섬세한 표현이 전달됐고, ‘금성’에선 평온한 분위기에서도 네 대의 플루트와 세 대의 오보에가 이뤄낸 목관의 합창은 정제된 음색이 만드는 아름답고도 낯선 화음을 들려줬다. ‘수성’에서는 이리저리 휘날리는 가벼운 제스처들이 일사불란하게 통제됐으며, ‘목성’은 쾌락이 폭발하는 첫 선율부터 복잡한 리듬과 거대한 음향으로 비상했다.
‘토성’에서 반복되는 패턴과 신비로운 음향 공간의 결합은 초월적으로 다가왔으며, ‘천왕성’은 이를 이어받아 신비로 발전시켰다. 마지막 ‘해왕성’은 각 악기군이 만드는 음향 조각으로 패치워크를 만들며, 마치 신비의 창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에 곡마다 다른 색의 조명을 공간에 비춰 감상자에게 우주를 유영하는 꿈과 같은 여행을 실감하게 했다. 앙코르는 역시 영국 작곡가인 에드워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1번으로, 환상의 시공간으로 떠난 관객을 현실로 돌려놓으며 귀갓길에 안녕을 고했다.
이번 공연은 익숙한 뮤지컬을 관현악의 이디엄에 투영한 작품과 즐겨 듣는 클래식은 아니나 이미지가 뚜렷한 작품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함으로써, 익숙함과 새로움의 조화를 이룬 공연이었다. 또한 지중배 지휘자는 자로 잰 듯한 꼼꼼한 지휘로 음악을 정교하게 구축했으며, 한경arte필하모닉은 각 곡의 감성, 이미지, 이야기를 안정적이면서도 극적으로 전달했다. 색색의 조명을 더해 환상적 시공간을 연출한 것은 보는 공연으로서의 흥미를 더했고, 감상자에게 음악의 시나리오를 더욱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이렇게 공연에 참석했던 누구나 기대 이상의 감흥을 얻었으리라 확신한다.
송주호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