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로 뉴욕 보헤미안의 성지가 된 곳 '파이스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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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에 발매된 재즈 레코드로 <미스터리오소(Misterioso)>라는 게 있다. 미스터리(Mystery)와 비르투오소(Virtuoso)를 합쳐 ‘신비스러운 거장’이라는 제목을 만들었다. 앨범의 커버는 형이상학파 화가인 조르조 데 키리코의 그림을 그대로 가져왔는데 ‘선견자(The Seer)’라는 작품이다. 정리하자면, 어떤 재즈의 대가가 세상을 미리 내다본 앨범쯤이 된다. 과연 누구의 앨범이기에 이토록 당당할 수 있을까?

<미스터리오소(Misterioso)> 앨범 커버. 조르조 데 키리코의 '선견자(The Seer)'의 그림이 담겨있다.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미스터리오소(Misterioso)> 앨범 커버. 조르조 데 키리코의 '선견자(The Seer)'의 그림이 담겨있다.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1956년 뉴욕시 보워리 지역에 문을 연 파이브 스팟 카페(Five Spot Cafe)는 보헤미안 지식인들의 아지트였다. 이른바 비트 세대의 작가, 시인, 화가들이 드나들었는데 <길 위에서>를 쓴 잭 케루악이 단골손님이었고 앨런 긴즈버그, 윌리엄 버로스가 시낭송회를 열었다. 원래는 샌드위치와 음료를 팔던 평범한 카페였지만 유명세를 타게 된 건 재즈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몽크가 정기적으로 공연을 펼치면서부터다.

필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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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브 스팟 카페. / 필자제공

파이브 스팟 카페. / 필자제공

몽크는 수수께끼 같은 연주자였다. 피아노를 치면서 (일반적이지 않은) 엉뚱한 음들을 연결한다든가 갑자기 멈추는 호흡, 절뚝거리는 리듬은 얼핏 불협화음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런 분절음들이 리듬적 긴장감을 만들며 독창적인 느낌을 이룬다. 몽크의 이런 방정식은 화성학의 측면에서 오랫동안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Thelonious Monk - Blue Monk]

서두에 언급한 <미스터리오소>는 바로 몽크의 앨범이다. 그리고 파이브 스팟 카페에서 녹음된 라이브실황이었다. 레코드를 플레이시키면 관객의 박수 소리가 들리고 몽크가 이끄는 4중주가 생생한 연주를 들려준다. 몽크는 당시 파이브 스팟의 시인, 작가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이 앨범은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기획되었다. 커버로 사용한 키리코의 그림은 원래 시인 랭보에게 바쳐진 것이었고 그림 속의 건축물과 원근감, 칠판에 그려진 기하학적인 설계도는 몽크의 유니크한 화성 운영을 연상시킨다.

파이브 스팟은 1967년까지 10년 정도 운영된 클럽이었다. 뉴욕의 유서 깊은 재즈 클럽들에 비하자면 그 기간이 짧은 편이다. 그러나 재즈사에서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 공간이었다. 몽크의 이색적인 연주를 훌쩍 넘어서는 재즈, 바로 전위적인 프리재즈(Free Jazz)가 여기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프리재즈는 코드나 박자 등 음악의 전통적인 구조와 관습을 무시하고 극한의 자유를 추구한 재즈다. 조성도 멜로디도 없으니 혼란스럽고 시종일관 즉흥연주에 몰입한다. 이런 음악을 일부러 돈 내고 듣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주변의 다른 클럽에서는 기회를 얻지 못했던 프리재즈 연주자들에게 무대를 내어준 곳이 파이브 스팟이었다. 대표적 인물인 오넷 콜먼(Ornett Coleman)이 데뷔 공연을 치른 곳도 파이브 스팟이었다.(1959년 11월)

파이브 스팟 카페. / 필자제공

파이브 스팟 카페. / 필자제공

파이브 스팟의 청중들 속에는 당대의 화가들도 있었다. 윌렘 드 쿠닝, 로버트 라우젠버그, 프란츠 클라인이 맥주를 마시면서 실험적인 재즈를 들었다. 그들 역시 전위적인 그림을 그리는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1세대였다. 1950~1960년대는 뉴욕의 추상표현주의가 크게 주목받았고 세계미술의 주도권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간 전환기였다. 그 중심에 잭슨 폴록이 있었다. 액션 페인팅과 드립 페인팅(물감을 떨어뜨리는 기법)으로 전통적인 회화의 틀을 깨뜨린 폴록은 추상표현주의의 선두 주자였다. 잭슨 폴록은 파이브 스팟과 직접적인 인연이 없겠지만(1956년에 음주운전 사고로 사망했다) 파이브 스팟에서 데뷔한 오넷 콜맨은 자신의 앨범 <Free Jazz>에 잭슨 폴록의 그림을 담았다. 재즈의 즉흥성과 드립 페인팅의 무의식적인 감정표현 사이에 교집합을 본 것이다.

잭슨 폴록, Alchemy(1947) Oil, aluminum, alkyd enamel paint with sand, pebbles, fibers, and wood on commercially printed fabric, 45 1.8 x 87 1.8 inches(1146 x 2213 cm). / 그림출처 © The Pollock-Krasner Foundation

잭슨 폴록, Alchemy(1947) Oil, aluminum, alkyd enamel paint with sand, pebbles, fibers, and wood on commercially printed fabric, 45 1.8 x 87 1.8 inches(1146 x 2213 cm). / 그림출처 © The Pollock-Krasner Foundation

오넷 콜먼의 앨범 <Free Jazz>. / 필자제공

오넷 콜먼의 앨범 <Free Jazz>. / 필자제공

비트 세대의 예술가들이 질풍노도의 꽃을 피우던 1950~1960년대, 파이브 스팟은 예술적 실험과 자유의 아지트였다. 관습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재즈가 박수를 받았고 몽크는 키리코의 그림으로, 오넷 콜맨은 잭슨 폴록의 그림으로 교감을 표했다. 파이브 스팟의 청중들이 전위적인 재즈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비상업적인 재즈를 순수예술로 받아들였다. 이후 재즈는 스윙과 블루스라는 전통을 넘어 모든 것을 수용하는 융합의 음악으로, 월드뮤직으로 나아갔다.

남무성 재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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