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 마네와 폴 세잔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 누구에게나 친숙한 이름일 것이다. 모두 프랑스 근대 회화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이들의 잘 알려진 작품을 영국 런던에서 만날 수 있어서 놀랐다. 바로 코톨드 갤러리(The Courtauld Gallery)에서였다.
코톨드 갤러리는 영국인 사업가 사무엘 코톨드(Samuel Courtauld, 1876~1947)가 설립했다. 섬유업을 하던 그는 열렬한 예술 후원가였다. 그는 특히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컬렉션을 통해 당대 프랑스 미술이 내디딘 실험적 걸음을 영국에 소개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1932년에 코톨드 미술연구소(Courtauld Institute of Art)를 설립했다. 그리고 그곳에 컬렉션을 기증했다. 코톨드 갤러리도 그 해에 함께 문을 열었다.
이 갤러리는 런던 템스강을 따라 자리 잡은 서머셋 하우스 안에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항상 방영하는 영국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 나오는 아이스링크가 있는 궁전이 바로 서머셋 하우스이다. 코톨드 갤러리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컬렉션을 자랑한다. 코톨드 갤러리는 내셔널 갤러리나 테이트 같은 대형 박물관보다 상대적으로 여유롭다. 조용한 환경에서 명작을 여유롭게 감상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코톨드 갤러리는 근대 회화의 문을 연 마네의 작품을 여럿 소장하고 있다. 마네는 19세기 도시화 과정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생활 양상을 자신의 시각으로 재구성하여 회화에 담았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1882)이 그중에 하나이다. 이 작품은 지친 표정의 바텐더와 거울에 비친 복잡한 술집 풍경을 담고 있다. 마네는 거울에 속에 비친 술집 풍경을 의도적으로 편집하여 표현했다. 도시 노동자의 고립과 소외를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된다.
후기 인상주의 대가인 세잔의 대표작도 볼 수 있다. 바로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1892~1895)이다. 카드놀이라는 주제로 그린 연작 중 하나가 코톨드 갤러리에 있다. 이 작품에서 세잔이 인물을 표현하는 방식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는 그림 속 인물의 몸을 기하학적 덩어리로 구성했다. 또 인물의 표정이나 감정을 묘사하기보다는 화면 전체의 구조와 균형을 강조했다. 세잔의 풍경화 <커다란 소나무와 생트 빅투아르 산>(1887)도 눈에 들어왔다. 그는 풍경도 넓은 색면과 단순한 도형으로 나타냈다. 복잡한 현실을 더 근본적인 요소로 나누어 탐구하려는 태도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자연을 원통과 구 그리고 원뿔로 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코톨드 갤러리는 당대 영국 미술계의 성과를 보여주는 전시 공간도 따로 두고 있다. '블룸즈버리 그룹(Bloomsbury Group)'을 위한 별도 공간이 그것이다. 블룸즈버리 그룹은 20세기 초 런던 블룸즈버리 지역에서 활동한 지식인과 예술가 모임이다.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와 미술 평론가 로저 프라이 그리고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같은 인사가 그룹에 참여했다. 여러 젊은 영국 예술가도 이 그룹에 속했다. 이 그룹은 보수적 사회를 비판하고 자유로운 학문을 추구했다.
이 가운데 프라이는 프랑스 후기 인상주의 미술을 영국에 소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코톨드 갤러리와 미술연구소를 설립할 때도 핵심 역할을 맡았다. 프라이는 '후기 인상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1910년에 런던에서 《마네 그리고 후기 인상주의》 전시를 기획하면서 이 용어를 처음으로 썼다. 그는 후기 인상주의가 단순한 재현을 넘어서 정신적 경험을 조형적 형식으로 표현한다고 보았고 이를 높게 평가했다. 예술이 인간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블룸즈버리 그룹 방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작품은 버네사 벨의 <대화>(1913~1916)였다. 벨은 『자기만의 방』의 저자인 울프의 언니였다. 울프는 작가로서 벨은 미술 작가로서 그룹에 함께 참여했다. <대화>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세 여성을 묘사한 작품이다. '대화’라는 주제는 블룸즈버리 그룹이 추구한 지성과 자유라는 핵심 가치와 맞닿아 있다. 교육 기회가 부족하고 사회에서 지위도 상대적으로 낮은 여성이 나누는 진지한 대화! 그것만으로도 그 시대에는 강렬한 메시지였을 것이다. 작가는 작품 속 여성의 몸을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넓은 면으로 표현했다. 이 부분은 형태를 단순화하고 색을 강조한 세잔의 기법과 닮았다. 후기 인상주의가 영국 미술에 미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덧붙여 기존의 표현 방식을 넘어서려는 형식적 실험은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와 잘 맞물린다.
갤러리를 빠져나올 때 정면으로 마주친 세실리 브라운의 회화 작품 <그녀의 회상에서>(2021)도 기억에 남는다. 이 작품은 코톨드 갤러리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 같았다. 갤러리 맨 위층 벽면 전체를 파노라마 형식으로 장식한 이 작품은 갤러리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이다. 아쉽게도 올해까지만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브라운의 작품은 강렬한 붓질과 색채로 구상과 추상을 섞어 놓았다. 작품 속에 있는 목욕하는 인물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1862~1863)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코톨드 갤러리가 <풀밭 위의 점심식사> 습작을 소장하고 있다는 걸 고려하고 제작한 것 아닐까 싶었다. 마네 작품을 모티프로 삼았지만 여성 대신 슬쩍 남성 누드로 바꾼 것이 흥미로웠다. 브라운의 작품은 동시대 영국 회화가 프랑스 근대 회화의 실험 정신을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프랑스 회화가 시작한 실험적 시도는 변형된 모습으로 시간을 넘어 런던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프랑스 근대 회화는 대부분 구상 회화이다. 구상이라고 해서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대로 옮긴 것은 결코 아니었다. 외부 세계를 자신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근대 회화가 지금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주관적 경험을 토대로 현실을 재편집하는 방식이 개인의 감성을 중시하는 현대인의 사고방식과 들어맞는 것 아닐까?
김선경 미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