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대표는 이날 제1야당인 국민의힘과의 관계에 대해 “여야 개념이 아니다”라며 12·3 비상계엄에 대한 사과와 반성 없이는 악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국민의힘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절연하지 못한 채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07석의 제1야당으로서 실체가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국민의힘과의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 협력까지 배제하는 듯한 태도는 ‘정치 복원’을 강조해 온 이 대통령의 기조와도 거리가 있다.
정 대표는 “검찰·언론·사법 개혁을 추석 전에 반드시 마무리하겠다”며 입법 속도전을 공언했다. 하지만 시간표에 쫓기듯 무리하게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정 대표는 언론 개혁과 관련해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거론했는데, 언론 자유 압박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와 대법관 증원도 사법 체계의 근간을 다시 짜는 문제인 만큼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고 숙의할 필요가 있다.
정 대표는 “싸움은 제가 할 테니 대통령은 일만 하라”는 말도 했다.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일 수 있지만, 대통령과 국정 전반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는 집권 여당 대표의 말로 적절한지 의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에 따른 국제 질서의 급변과 잠재성장률 저하로 끝없이 주저앉는 경제 상황 등 나라 안팎의 현실은 집권당 대표가 ‘싸움’에만 몰두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이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도 정 대표 앞에 놓인 중요한 과제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한 몸’이라며 “굳이 쓴소리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여당이 여론을 가감 없이 전하는 가교가 돼야 국정이 독선으로 흐르는 걸 막을 수 있다. 윤 전 대통령은 야당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민심에 귀 닫은 채 독단적 국정 운영을 거듭하다 불법 계엄이라는 자기 파멸적 선택을 했다. 국민의힘은 ‘당정일체’만 외치다 국정 실패를 조장하고 방관한 책임이 있다. 정 대표가 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이런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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