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용산 대통령실 이전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잘못 끼운 첫 단추였다. 당선 열흘 만에 공약했던 광화문 대신 용산으로 이전하겠다고 선언했고, 취임 첫날 대통령실 이전과 청와대 개방을 단행했다. 대통령실 이전은 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약속하고도 실현하지 못한 과제인 만큼 충분한 검토와 의견 수렴이 필요했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은 “일단 들어가면 못 나온다”며 군사 작전하듯 밀어붙였다. 왜 하필 용산인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해 “천공 등 비선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퍼졌다.
▷대통령실 이전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원활한 소통’은 공염불에 그쳤다. 출근길 도어스테핑은 반년 만에 중단됐고, 대통령 기자회견은 2년 가까이 안 열렸다. ‘국민이 대통령 일하는 걸 볼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소통하는 대신 윤 전 대통령은 외부와 단절된 삼청동 안가에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소수의 측근과 비밀스러운 모임을 하며 야당 탓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자신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옛 국방부 청사에서 비상계엄까지 선포하며 몰락을 자초했다.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기는 데 들어간 비용은 국회예산정책처 추산으로 832억 원, 더불어민주당 추산으로는 1조 원 이상이다. 최근 정부가 대통령실을 청와대로 재이전하는 예비비로 259억 원을 배정한 걸 감안하면, 간접비용을 빼고 순수하게 대통령실이 오고 가는 데만 최소 1000억 원 넘는 국민 혈세가 쓰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비상계엄의 악몽이 남아 있는 용산에 계속 있을 순 없는 노릇이고, 일부에서 주장하는 세종 집무실을 위해선 개헌이 필요하다. 그렇다 보니 현실적으로 청와대 외에는 마땅한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정부는 대통령실이 돌아온 후 청와대를 다시 개방할지에 대해선 ‘검토 중’이란 입장이다. 하지만 이미 국민 여섯 명 중 한 명이 청와대를 구석구석 둘러봤다. 방문객 수가 입증하듯이 청와대 개방에 대한 수요도 많다. 업무공간이나 관저까지는 곤란하겠지만, 대통령 입주 후에도 정원과 등산로 산책, 문화재 관람 정도는 시민에게 허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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