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어릴 적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어요.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녹음하길 줄곧 기다려왔습니다.”
김봄소리는 30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아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봄소리는 아시아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최초로 독일 음반기획사 도이치그라모폰과 전속 계약한 1989년생 음악가다. 사람이 노래하는 듯한 섬세한 표현력이 매력으로 꼽힌다. 지난 9일 유니버설뮤직을 통해 앨범 <브루흐 & 코른골트> 앨범을 발매했다. 도이치그라모폰에서 그가 4년 만에 낸 두 번째 정규앨범이자 첫 협주곡 앨범이다. 독일 악단 밤베르크 심포니와 합을 맞췄다.
밤베르크 심포니는 체코슬로바키아에 살던 독일인들이 독일 바이에른주의 소도시인 밤베르크로 건너가 1946년 세운 악단이다. 독일 출신 작곡가인 브루흐, 체코 출신인 코른골트 모두의 정체성을 고루 반영할 수 있다. 이 악단은 김봄소리의 앨범 발매에 맞춰 유럽과 아시아 각국을 돌며 협연하고 있다. 지난 17일과 18일 독일 밤베르크에서, 19일 뮌헨에서 공연했다. 오는 31일엔 성남아트센터에서, 다음 달 1일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한국 관객과 만난다. 같은 달 3일엔 대만 타이베이로 건너가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을 선보인다.
“스승보다 녹음 분위기 나았다 확신”
김봄소리에겐 이번 앨범 발매와 순회공연이 각별하다. 그는 밤베르크 심포니가 과거 작업했던 브루흐 곡을 들으며 바이올리니스트로서 꿈을 키웠다. 김봄소리는 “제 은사였던 김영욱 선생님이 1972년 밤베르크 심포니와 발매했던 브루흐와 멘델스존 앨범을 닳도록 들으면서 이 악단의 팬이 됐다”며 “체코와 독일의 전통이 만나서 내는 특별한 소리에 깊이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협연을 위해 김봄소리가 기다린 시간만 2년이다. 그는 “밤베르크 심포니 상임지휘자인 야쿠프 흐루샤가 우리 시대에 가장 바쁜 지휘자인 만큼 연주 날짜를 맞추느라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고 설명했다.
김봄소리가 흐루샤와의 협업을 손꼽아 기다린 데엔 코른곹트의 출신도 영향을 미쳤다. 김봄소리는 “코른골트는 체코 브르노(당시 오스트리아 브륀)에서 태어났는데 흐루샤도 같은 브르노 출신”이라며 “코른골트에게서 보헤미아 지방의 색채가 잘 묻어나는 만큼 (같은 곳에서 태어난 흐루샤와) 함께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브루흐에 대해선 “코른골트와 다른 음악색을 드러내지만 사랑이란 주제를 공유하고 있는 만큼 각각의 협주곡이 낭만의 극치를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밤베르크 심포니가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고. 김봄소리는 “뮌헨 공연에서 제가 코른골트 협주곡을 연주했고 밤베르크 심포니는 2부에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을 연주했는데 이렇게 2부가 기다려진 적이 처음이었다”며 “눈물이 터져나올 정도로 감동적인 공연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번 녹음 과정도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다. 스승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보다 발전한 부분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김봄소리는 “녹음 분위기만큼은 제가 훨씬 좋았을 걸로 확신한다”며 “이렇게 자유롭고 음악적인 시도를 많이 할 수 있는 녹음을 하게 돼서 (악단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케스트라가 가족처럼 호흡을 맞추다 보니 단원들도 디테일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는 분위기였어요. 녹음 일정으로 잡았던 3일간이 처음엔 조금 모자라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한 세션을 줄일 정도로 녹음이 일찍 끝났어요. 연주회장에서 느끼는 시너지와 에너지가 나왔던 덕분이에요.” 이날 간담회에 함께 참석했던 마르쿠스 악스트 밤베르크 심포니 대표도 “이번 녹음 레퍼토리를 공연 시즌에 꼭 포함시켜야 한다고 단원들이 얘기할 정도로 매우 만족스러운 협업이었다”고 동감했다.
흐루샤 “김봄소리는 모든 음에 애정 담아”
김봄소리가 녹음을 수월히 끝냈던 데엔 지휘자였던 흐루샤도 큰 몫을 했다. 흐루샤는 이번 녹음에서 다뤘던 작곡가인 코른골트의 음악을 “모국어처럼 제 삶에 녹아 있다”고 정의했다. 그는 “같은 체코 국적으로서 보기에 코른골트의 음악은 중앙유럽의 언어를 대표하는 음악”이라며 “이 지역의 모든 음악 활동이나 모든 사람들의 삶 속에 그의 음악이 잘 녹아 있는, 마치 가족과도 같은 음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악단과 코른골트의 정체성도 연결지었다. 흐루샤는 “코른골트도 독일어권 체코에서 자랐고, 밤베르크 심포니도 체코에서 독일로 온 사람들이 세운 악단”이라며 “음악에 대해서도 양쪽이 비슷한 사랑과 감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체코 음악의 특성을 묻는 질문엔 깔끔한 도식을 제시했다. 체코 수도인 프라하가 있는 보헤미아와 이 국가 제2의 도시인 브르노가 있는 모라비아의 문화가 다르다고. 보헤미아는 독일과 가까워 개신교, 맥주의 영향이 강하지만 모라비아는 이탈리아,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등과 가까워 가톨릭, 와인이 강세라는 얘기다. 흐루샤는 “보헤미아의 대표 작곡가가 스메타나라면 모라비아의 대표는 야나체크”라며 “두 지역을 잇는 작곡가가 드보르작이고 이를 계승하는 게 말러”라고 덧붙였다.
흐루샤는 김봄소리와의 협업에서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김봄소리는 눈부신 감성과 진정한 영혼을 가진 연주자”라며 “모든 음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애정을 갖고 연주한다”고 극찬했다. “녹음은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면서도 인생 전체로 보면 찰나인데 김봄소리와 함께한 녹음은 깊이 있고 심오한 순간이었다”고 했다. 이어 “작곡가가 악보에 숨겨놓은 보석 같은 음악을 최대한 빛낼 수 있도록 연주하면서도 즉흥성을 놓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한 공연은 독일과 체코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들로 레퍼토리를 채웠다. 오는 31일엔 스메타나의 오페라 <두 과부> 서곡,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연주한다. 6월 1일엔 브람스 대신 베토벤 교향곡 7번을 넣었다. 악스트 대표는 ”한국에선 2015년과 2023년 공연한 적이 있는데 당시 관객들이 보여줬던 열광적인 반응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며 ”이번 앨범에 녹음된 레퍼토리를 공연으로 선보이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