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이후 건설 노동계의 첫 하투(夏鬪)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레미콘·타워크레인 노동조합에서 파업 조짐이 산발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다른 건설 업종들도 상황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1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소속 전국레미콘운송노동조합(레미콘 운송노조)은 지난 7일부터 HDC현대산업개발의 전국 건설 현장에 레미콘 운송을 중단한 상태다. 발단은 이 회사가 광운대 복합개발단지에 배처플랜트 설치를 검토한 데서 비롯됐다.
배처플랜트는 시멘트에 모래, 자갈 등 재료를 혼합해 레미콘을 생산하는 대형 설비다. 레미콘은 제조 후 90분 이내에 타설하지 않으면 굳어버려 사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지하 토목공사 현장 등 운송이 어려운 지역에서는 배처플랜트를 현장에 설치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아파트 공사 현장에 배처플랜트를 설치하려는 이유는 안전 문제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광운대 역세권 현장은 교통 혼잡지역에 위치하고, 인근에는 4000가구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가 밀집해 있다”며 “통학로와 일반 도로가 가까워 하루 수백 대의 레미콘 믹서트럭이 드나들면 학생과 주민의 교통 안전이 우려된다는 민원이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광운대 역세권 개발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지역 주민들은 노원구청과 현대산업개발 측에 대규모 공사에 따른 안전 우려에 대한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레미콘 운송노조는 일자리 부족 등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한다. 토목 현장 위주로 쓰이던 배처플랜트가 주택 건설까지 확대되면 타격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레미콘 운송노조 관계자는 “건설사가 현장에서 배치플랜트를 설치해 직접 생산하면 레미콘 운송업체는 그만큼 일감이 줄어 생계에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면서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침해하는 행태라 불가피하게 저지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운송 중단 사태에 따른 타격은 레미콘 제조사와 건설사가 입고 있다. 수도권에 등록된 레미콘 믹서트럭 약 1만1700대 중 8300여 대가 레미콘 운송노조에 가입돼 있어 레미콘 제조사는 다른 운송 수단을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레미콘 제조사 관계자는 “운송노조가 현대산업개발 운송 거부를 시작한 후 레미콘 출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며 “믹서트럭을 구할 수 없어 물량이 발주돼도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건설사인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도 “운송노조가 레미콘 공급을 중단하면서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모든 현장이 공사기한을 지키는 데 차질을 빚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는 지난 3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 신청을 제출했다. 임금 5% 인상과 코핑 수당 지급 등을 요구하며 지난달부터 진행해온 노사 단체교섭이 결렬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앞서 민주노총은 지난 2일 노동조합법 2·3조 개정(노란봉투법) 재추진과 화물차 기사의 적정 임금 보장을 위한 안전운임제 복원 등을 주장하며 오는 16일과 19일 이틀간 총파업을 선포했다. 포항, 광양, 여수, 대산, 울산 등 5개 지역 플랜트건설 노조도 일제히 쟁의조정 신청에 돌입했다.
급등한 자재비와 건설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 여파로 휘청거리는 건설업계는 노조 리스크까지 확대되면서 걱정이 더 커지고 있다. 대형 건설사 임원은 “임금 인상부터 배처플랜트 설치 철회 요구까지 노조 주장이 더 강해지는 추세”라며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극심했던 노조와 회사 측 갈등이 재연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