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이 1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들의 불안한 삶은 어느덧 일상이 됐다. 전공의가 떠난 의료 현장에선 번아웃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집단 휴학한 의대생들의 새 학기 복학 여부와 2026학년도 의대 정원 규모 결정은 ‘발등의 불’이다.
대타협이 절실한데도, 의료 및 교육 현장의 파행은 끝날 기미조차 없다. 의료계가 의대 정원을 증원 이전인 2024년(3058명) 수준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한 해법은 요원해 보인다.
증원 규모 총장에 맡긴다지만….
의정 갈등의 얽힌 실타래를 풀어낼 단초는 내년도 의대 정원이다. 의정 간 강대강 대치가 여전하지만, 이 문제에서 타협을 보면 의료 정상화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각 대학 총장에게 내년 의대 모집 정원을 조정할 수 있게 하겠다는 정부의 최근 제안은 주목받았다. 보건복지부가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보건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 설치 법안에 추가한 2026학년도 정원 관련 부칙이 그것이다. 부칙이 포함된 법안이 통과되면 총장 결정에 따라 내년 의대 정원은 증원 이전인 2024학년도 3058명 대비 0~2000명으로 달라질 수 있다.
대화의 물꼬가 트일 것이란 복지부 기대와 달리 부칙은 총장과 의대 학장 간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벌써 전국 40개 의대 학장이 속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가 총장들에게 공문을 보냈다. “정부에 내년도 정원을 3058명으로 재설정하고, 2027년 이후 의대 총정원은 의료계와 합의해 구성한 추계위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요구한 만큼 대승적 차원에서 (총장들이) 함께해 달라”는 내용이다.
총장들 고심이 클 수밖에 없다. 의대를 키워 학교 경쟁력을 높이려는 총장들로선 정부와 대학본부, 의대 구성원들의 눈치를 동시에 봐야 하는 난감한 처지가 됐다.
'증원 철회' 고집하면 타협 어려워
의대 정원 확대는 지역 필수의료 위기 해소와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증가에 대비하기 위한 개혁의 첫걸음이다. 물론 ‘5년간 2000명씩, 1만 명 확충’이라는 숫자에 과도하게 집착한 탓에 의료계의 거센 반발을 부른 측면이 없지 않다. 여기에 12·3 비상계엄 포고령에 ‘전공의 처단’ 문구까지 담기면서 사태는 더 꼬였다. 그렇다고 해도 국민 다수와 시민단체는 물론, 의료계 내부에서도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에 공감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의정 갈등 1년 동안 많은 것을 잃었다. 1만3000명에 달했던 수련 전공의는 1100명대로 급감했다. 대학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의 배후진료가 약화해 결과적으로 더 생존할 수 있었던 고령·중증 환자들이 생을 일찍 마감했다. 절벽에 봉착한 의사 배출은 또 어떤가. 신규 배출 의사는 10분의 1, 전문의 시험 응시자는 5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의대생 휴학이 장기화하면 의료 인력 부족 사태가 회복 불능 상태로 빠져들지 모른다.
2026학년도 의대 정원 문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 정부가 대학에 어느 정도 자율권을 주겠다고 밝힌 만큼 의료계도 증원 전면 백지화 같은 무리한 요구를 거둬들여야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복지부와 교육부도 결자해지의 자세로 타협의 물꼬를 터야 한다. 곧 신학기가 시작된다. 타협할 시간도 이젠 별로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