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간담회
농산물분야 개방 사실상 시사
"소비자 후생·제도 개선 고려
큰틀서 유연하게 대처할 것"
농민단체 벌써 강경대응 조짐
트럼프 "韓, 협상 타결 원해"
미국이 8월 1일로 정한 한미 관세협상 시한을 보름 앞두고 통상당국이 농산물 시장 개방 카드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사진)은 14일 방미 결과를 설명하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어느 나라와 협상을 하건 농산물이 고통스럽지 않은 적은 없었고, 그러면서 우리의 산업경쟁력은 강화됐다"며 "농산물 부문도 지금은 전략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는 랜딩존(합의점)을 찾기 위한 협상을 본격화하면서 (미국과) 주고받는 협상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제도 선진화와 국내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식으로 농산물에 대한 빗장을 풀고, 이를 지렛대 삼아 트럼프 관세 '대못'을 뽑겠다는 포석이다. 한미 관세협상이 시작된 이후 통상당국이 농산물 시장 개방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공개한 '2025년도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에서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 제한 △고기패티·건조육 등 가공육 수입 금지 △블루베리, 체리, 사과, 배, 딸기, 라즈베리 등에 대한 시장 제한 △유전자변형 농산물(LMO)에 대한 비효율적 승인 절차 등을 거론하고 있다.
여 본부장은 "분명 우리가 지켜야 할 부분이 있지만 또 우리의 제도 개선이나 경쟁력 강화, 어떻게 보면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도 유연하게 볼 부분이 분명히 있다"며 "민감한 부분은 지키되 그렇지 않은 부분은 협상의 전체 큰 틀에서 고려해야 할 지점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한국이 관세협상 타결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기자들에게 "한국은 현재 협상을 타결하고 싶어 한다. 알다시피 한국은 상당한 관세를 지불하고 있지만 결정을 내리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일본은 우리한테 자동차 수백만 대를 팔지만, 우리 자동차를 받지 않아 우리는 일본에 자동차를 팔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방식을 매우 매우 빠르게 바꾸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요 협상국들의 태도 변화를 언급하며 한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인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국 통상당국은 그러나 '협상 데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여 본부장은 이달 내 관세협상 타결 가능성을 두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지만, 굉장히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과 여러 원인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도 함께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도 "시간 때문에 실리를 희생하는 그런 것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적으로 협상안을 만들어 맨데이트(위임)를 받아 가는 과정이 미국과의 협상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미국의 비상식적인 통상 압박에 굴복해 또다시 농업을 희생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반발했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1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다고 예고했다.
농산물 시장을 추가 개방하더라도 미국이 원하는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축소에는 큰 영향을 미치기가 어렵다는 평가도 나왔다. 올해 상반기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252억4000만달러로 2022년 상반기 127억7000만달러 대비 2배가량 늘어났다. 그러나 전체 상품무역에서 농산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유준호 기자 / 워싱턴 최승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