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의료 및 헬스케어 기업의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모든 사람의 목표가 되면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글로벌 브랜드가 생산한 의약품이나 생활용품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그런데 믿을만하다고 생각되었던 대형 제약회사가 온갖 거짓과 부패로 얼룩진 곳이라면? 의료 실험을 조작하거나 엄청난 리베이트를 통해 실제로는 우리 몸에 해로울 수 있는 제품을 거리낌 없이 세상에 선보여왔다면?
최근 미국에서 화제인 책 <노 모어 티어스(No more Tears)>는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의약품과 생활용품을 팔고 있는 글로벌 제약회사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의 어두운 비밀을 폭로한다. 지난해 의료산업 분야 매출 1위를 차지하며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브랜드’로 손꼽히는 존슨앤존슨에 대한 충격적인 사실이 공개된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 등에서 의학 전문 기자로 활약했던 가디너 해리스(Gardiner Harris)는 글로벌 제약회사의 걷잡을 수 없는 욕심이 어떻게 전 세계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는지 고발한다. 2004년 존슨앤존슨 영업 담당자와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시작된 취재는 지속적인 조사와 관련자 인터뷰를 통해 20년 만에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탐사 저널리즘의 끝판왕’이라고 할 만하다.
‘노 모어 티어스’는 존슨즈베이비에서 생산하는 신생아 전용 제품에 표시된 일종의 ‘제품 철학’이었다. 하지만 아기가 미소를 지으며 목욕하는 이미지 뒤에는 뿌리 깊은 거짓과 부패가 도사리고 있었다. 책에 소개된 여러 사례를 읽다 보면, ‘이윤추구’라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대형 제약회사의 비윤리적 태도에 몸서리치게 된다. 베이비 파우더와 암의 연관성에 대한 거짓말과 은폐, 전 세계 판매량 1위 두통약 타이레놀의 심각한 위험성, 수천 명의 생명을 앗아간 항정신병 약물 판매를 위한 범죄적 캠페인, 그리고 암 환자에게 사용된 약물이 도리어 종양을 키우는 결과로 나타난 충격적 이야기 등 믿기지 않는 사실들이 낱낱이 공개된다.
존슨앤존슨이 빈혈치료제로 개발한 ‘프로크리트’는 직접 수혈이 필요한 만성 빈혈 환자에게 투여되는 의약품이었지만, 오랫동안 항암치료를 받는 암 환자의 빈혈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목적으로 사용됐다. 2003년 한 의학저널에 프로크리트의 성분인 에리트로포이에틴(EPO)이 오히려 종양의 성장을 촉진하거나 심장 부작용을 일으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지만, 존슨앤존슨은 약물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수많은 데이터를 숨기면서까지 실컷 의약품을 팔아댔다. 암 전문의들을 동원해 약물의 위험성을 감추려 했다. 결국 ‘EPO스캔들’이 터지면서 세상이 떠들썩해졌다. 대형 제약회사가 환자들의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의사와 의료기관에 리베이트를 제공하면서까지 특정 약물을 처방하도록 했다는 사실에 미국인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 제약회사의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수많은 의료 및 헬스케어 기업들의 상황은 어떠할까? 자신들의 잇속을 차리기 위해 양심까지도 져버린 제약회사의 추악한 행태에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