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외기 물로 화분에 물주고, 빨래는 속초로 ‘엑소더스’
사상 최악의 가뭄에 직면한 강릉 시민들의 일상이 사실상 마비됐다. 수도꼭지를 틀어도 하루 1시간 남짓 물이 나오고, 그마저도 미리 받아두지 않으면 생활이 불가능해지자 시민들은 제각각의 방법으로 ‘극한 가뭄’을 버티고 있다.
9일 오전 강릉 홍제동의 한 아파트. 정 모 씨(40대) 부부는 출근과 아이 등원 준비로 분주했다. 이 아파트에 물이 공급되는 시간은 오전 7시부터 단 30분. 평소라면 늦잠을 자던 첫째 아이는 벌써 빵과 요거트로 아침을 해결하고 있었다.
주방 그릇에는 설거지 물을 아끼기 위한 비닐이 덮여 있었다. 정 씨는 “단수가 되면 설거지와 빨래, 화장실 물이 제일 문제”라며 “빨래는 단수되지 않은 주문진 빨래방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설거지는 묵히면 위생 문제가 있어 비닐을 씌운다”고 말했다.집 안에는 강릉시가 전국에서 지원받아 배부한 생수도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이 물은 음용이 아니라 화장실 변기 물 내리는 데 쓰이고 있었다. 욕조엔 전날 단수 직전 받아둔 물이 가득 차 있었지만, 아이 세수조차 ‘고양이 세수’로 대신해야 했다.
강릉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물 절약 노하우 공유 글이 잇따른다. 물걸레 대신 물티슈로 바닥을 닦는 건 기본 축에 못낀다.
에어컨 실외기에서 떨어지는 응축수는 모아 화분에 주거나 변기 청소에 쓴다. 시중에서 파는 물뿌리개를 생수병에 꽂아 쓰는 인증 사진도 올라온다.커뮤니티엔 비닐 대신 호일을 씌운 그릇 사진부터 “생수 두 통으로 아이 샤워를 시키다 자괴감이 왔다”는 글, “잠깐 내린 빗물까지 모으는 신세가 될 줄은 몰랐다”는 토로가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정작 강릉의 물 그릇은 채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농어촌공사에 따르면 재난사태 선포 열흘째인 9일 오전 8시 기준 강릉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12.3%로, 전날(12.4%)보다 0.1%p 더 낮아졌다. 역대 최저 수준이자 48일 연속 감소 기록이다.
(강릉=뉴스1)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