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출신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에는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있지만, 그 중 일부는 별을 바라보고 있다(We are all in the gutter, but some of us are looking at the stars)”라는 대사가 나온다.
21세기의 4분의 1이 지난 현재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는 다중위기라는 용어가 실감이 날 만큼 다양한 도전과제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암울한 상황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고개를 들어 '별'을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위기는 현재보다 훨씬 더 좋거나 훨씬 더 나쁜 미래로 이행할 수 있는 두 가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더 좋은 미래의 구성 요소는 풍요(abundance)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풍요는 '충분한 수준 이상의' 물질적 삶의 조건을 의미한다. 지속가능성은 '미래 세대의 필요를 충족할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하는 것이다.
따라서 더 좋은 미래는 풍요롭고 지속가능한 미래다. 다시 말해 누구나 인간으로서 품격있는 삶을 누리며, 그러한 사회가 영구적으로 지속되는 미래다.
기후위기, 불평등, 극우 파시즘 등 여러 가지 위기에 직면에 있는 현재 인류의 상황에서 볼 때 위와 같은 미래는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 같이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인류가 인공지능(AI)과 재생에너지로 대표되는 파괴적 기술 혁신(disruption)을 현명하게 활용한다면 풍요롭고 지속가능한 유토피아적 미래를 수십 년 내에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좋은 미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냉철한 전망을 바탕으로 원하는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정책들을 준비해야 한다.
◇신자유의주의 이후의 질서(post neoliberal order)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국민은 신자유주의와 우파 포퓰리즘 간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 처해 있다.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 이후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의 중심 이념으로 자리 잡았고 미국, 영국 등 주요 국가의 진보와 보수 정당 모두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채택해 왔다. 이로 인해 전통적 좌우파의 경제적 차별성이 약화됐고 우파 포퓰리즘이 부상하게 된다.
캠브리지대 역사학과 교수인 게리 거슬은 '신자유주의 질서의 흥망성쇠(The Rise and Fall of the Neoliberal Order)'에서 질서(order)란 특정 시점의 지배적인 이념으로서 정치 기득권층에 의해 종합되고 전파된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지난 한 세기 동안 미국에는 뉴딜 질서(New Deal Order)와 신자유주의 질서(Neoliberal Order)의 두 가지 주요 정치적 질서가 존재했다.

신자유주의 이후의 새로운 질서(post-neoliberal order·PNO)는 불평등 완화, 기술 규제, 복지국가 재구축, 지속가능성, 다극적 국제 질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치·경제적 패러다임으로 정의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기존 신자유주의의 시장 중심적 질서가 아닌 사회적 연대와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것이다.
새로운 질서로 자리를 잡기 위해 40여년이 걸린 신자유주의와 달리 PNO는 디지털 기술, 기후 위기 등의 덕분에 더 빠르게 10~20년 안에 실현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리더십이 무엇보다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파괴적 기술혁신(disruption)과 문명 대전환
미국의 리싱크엑스(RethinkX) 연구소는 2020년 발간한 '인류를 다시 생각한다(Rethinking Humanity)' 보고서에서 파괴적 기술 혁신으로 인한 인류 문명의 대전환을 예측한 바 있다.
보고서는 생산 체제가 중앙집중식 추출(extraction)과 희소 자원의 파괴 방식에서 무한정의 구성 요소를 이용한 '지역화된 창조(localized creation)' 방식으로 변화한다고 전망했다. 또 정보 네트워크를 통해 협력적으로 설계·개발된 제품이 지역적으로 생산·유통됨에 따라 지리적 장점은 사라지고 모든 도시와 지역은 자급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것은 산업혁명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변화로서 인류는 생존의 시대(Age of Survival)와 추출의 시대(Age of Extraction)에 이어 자유의 시대(Age of Freedom)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또 보고서는 인류가 역사상 처음으로 빈곤을 극복하며 식품, 에너지, 운송, 정보, 주거 등 기본 수요에의 접근이 기본인권이 될 것이라고 봤다.
공공의 역할에 대해서는 위성인터넷, 태양광, 공유자율주행 전기차 등 주요 기반영역에서 신규 인프라와 가치사슬을 최대한 빨리 구축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또 에너지, 헬스케어 등 필수 서비스에 대한 기본권과 같이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는 재화·서비스 시대의 새로운 소유 모델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봤다.
사회 구성체제의 발현적(emergent) 성격을 고려해 새로운 사회 구성체제가 생겨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경제적 기본권 보장을 통한 더 좋은 미래로의 전환
194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 인권 선언 제25조는 '모든 사람은 의식주, 의료 및 필요한 사회복지를 포함해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정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와, 실업, 질병, 장애, 배우자 사망, 노령 또는 기타 불가항력의 상황으로 인한 생계 결핍의 경우에 보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경제적 기본권을 명시하고 있다.
세계 인권 선언이 채택된 지 거의 8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극빈 인구가 전 세계적으로 10억명 이상이다. 기술 혁신을 통한 '보편적 원가하락' 현상을 잘 활용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극빈을 제거하고 모든 사람의 경제적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기본권 보장의 핵심은 보편적 기본서비스(Universal Basic Service·UBS)이다.
UBS는 2017년 영국 UCL대 헨리에타 무어 교수가 '미래를 위한 사회적 번영: 보편적 기본 서비스를 위한 제안' 보고서에서 영국 국가의료서비스(NHS)의 '사용 시점에서 무료(free at the point of use)' 원칙을 주거(shelter), 음식, 교통, 정보 등의 필수 분야로 확대하자고 제안하면서 관련 논의가 본격화됐다.
UCL 보고서에 영향을 받아 영국 노동당은 2019년 '보편적 기본 서비스(UBS): 좋은 삶에 대한 권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사회가 정하는 것 외에 '사용 시점에서 무료'라는 원칙이 어디까지 확장돼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한계는 없으며, 다음 노동당 정부는 전례 없는 방식으로 야망의 범위를 확장할 것”이라며 UBS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UBS 도입을 위한 가장 큰 걸림돌은 아마도 '감당가능성(affordability)'일 것이다. 하지만 케인즈가 “생산 능력 측면에서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지불할 수 있다”고 말했듯, UBS를 구현하기 위한 핵심은 돈이 아니라 우리의 집단적 의지이다.
더구나 AI와 재생에너지 분야의 파괴적 기술 혁신으로 인해 노동과 에너지의 가격이 급속히 하락해 제로에 수렴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UBS 구현을 위한 물질적 조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노동과 에너지가 거의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주요 원가를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인류는 모든 것이 저렴해지고 풍부해지는 풍요로운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 혁신의 잠재력에 기반한 UBS는 풍요롭고 지속가능한 훨씬 더 좋은 미래로 가는 열쇠다.
김선우 성균관대 소프트웨어융합대학 융합보안대학원 교수 sunkim11@skku.edu

〈필자〉성균관대 소프트웨어융합대학 산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19년부터 지속가능성을 위한 세계지방정부협의회(ICLEI·이클레이) 한국사무소 전문위원, 2021년부터 경기도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전라북도의 새로운전북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