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식 기행 : 영국 최대 식품·패션 유통 기업 AB푸드 [LON: ABF]
지난 3월 미국 대형 패스트패션 소매업체 ‘포에버21’이 2019년 이어 두 번째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포에버21은 1980년대 한국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한인 교포들이 창업한 브랜드입니다.
한때 저렴하고 스타일리시한 의류를 제공하는 브랜드로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며 급성장했습니다. 최전성기였던 2016년엔 미국 500여 개 매장, 전 세계 800여 개 매장을 운영했습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온라인 쇼핑 시장이 급성장과 함께 미국 내 대형 쇼핑몰의 쇠퇴가 가속화되면서 경영 악화로 이어졌습니다.
온라인 쇼핑에 밀려 쇠퇴한 미국 패션 기업은 포에버21만이 아닙니다. 제이크루, 갭, 브룩스브라더스 등 유명 브랜드들도 파산 위기에 몰렸다가 회생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글로벌 패션 업계는 자라, 유니클로처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효과적으로 병행한 패스트패션 업체와 쉬인처럼 온라인으로 세계를 휩쓰는 플랫폼만 살아남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온라인 판매하지 않고 오프라인 매장만 운영하면서 유럽과 미국에서 승승장구하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아일랜드에서 싹 틔워 영국에서 꽃 피운 패션 브랜드 프라이마크입니다.
프라이마크는 올해 3월 기준으로 세계 17개국에서 459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달 말 멤피스에 31번째 매장을 열 계획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에는 미국에서 9개 매장을 갖고 있습니다.
프라이마크는 초대형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서 의류를 박리다매하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티셔츠, 바지를 1만~2만원 대로 판매합니다. 온라인 판매는 포장, 택배, 반품 비용이 많이 들고, 재고 관리가 어렵다며 취급하지 않습니다.
영국에서만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픽업하는 클릭 앤드 콜렉트(Click & Collect)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옷을 가지러 왔다가 다른 제품을 추가로 구매할 수 있도록 매장 방문을 유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비용이 많이 드는 일반 광고는 하지 않고, 소셜미디어에서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합니다. 영국에서는 프라이마크를 사랑하는 사람을 칭하는 ‘프라이마니아(pri-mania)’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프라이마크의 모회사는 어소시에이티드 브리티시 푸드(Associated British Foods, 이하 AB푸드)라는 영국 종합 식음료 기업입니다. 2025 회계연도 상반기(2024년 9월~2025년 3월 1일) 실적발표에 따르면 전체 매출이 95억900만 파운드 중 의류 소매 부문이 44억7200만 파운드로 절반 가까이 차지했습니다. 푸드라는 회사 이름이 어색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AB푸드는 영국 최대 식품회사이기도 합니다. 의류 소매를 제외한 나머지 매출은 식료품, 음식 재료, 설탕, 농업 등 식품 관련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AB푸드는 1935년에 설립된 제빵 회사가 모태입니다. 이후 공격적 인수 합병을 통해 다양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라이비타, 앨린슨, 마졸라, 알라디노 등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브랜드는 영국을 대표하는 차 음료 트와이닝스일 것입니다. 트와이닝스는 1706년에 런던에서 첫 티룸을 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브랜드 중의 하나입니다. 1964년 AB푸드에 인수됐습니다.
2025 회계연도 상반기의 실적 하락에도 불구하고 AB푸드 주가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밝은 편입니다. 상반기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 대비 10% 감소한 8억1800만 파운드였습니다. 설탕 부문의 두 자릿수 이익률이 사라졌지만, 소매, 식료품, 음식 재료 부문 모두 이익률이 개선되었습니다. 특히 프라이마크의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장세에 주목합니다.
런던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AB푸드의 주가는 지난 11일 20.54파운드에 마감했습니다. 최근 1년간 17.97% 하락한 수치입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도이치뱅크는 최근 투자 의견 ‘보유’를 권고하며 목표주가를 22.2파운드로 제시했습니다.
최종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