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영]트럼플레이션이 부른 美 ‘둠 스펜딩’ 바람

20 hours ago 6

한때 ‘인생은 한 번뿐’이라며 ‘욜로(YOLO)’와 플렉스(Flex·과시형 소비)를 외치던 유행은 한풀 꺾였다. 경기 불황과 소비 침체가 길어지면서 ‘필요한 것은 하나뿐’이라며 실용적 소비를 중시하는 ‘요노(YONO)’가 새롭게 떠올랐다. ‘무지출 챌린지’ 등 극단적인 절약도 유행한다. 하지만 미국은 딴 세상이다. 생필품과 고가의 가전제품, 자동차를 구매하려는 행렬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미국 소비자들의 ‘탕진 소비’는 즐거움이라기보다 공포에 가깝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터트리고 있는 ‘관세 폭탄’으로 물가가 크게 오를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미 신용카드 정보공유업체 크레디트카드닷컴이 미국 거주자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응답자의 22%는 평소보다 더 많은 물품을 구매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은 아니지만 조만간 사재기하겠다는 답변도 20%였다. 소비를 위해 빚을 늘리고 있다는 사람도 많았다. 이 같은 사재기에 대해 ‘파멸적 소비(Doom Spending)’라는 우려의 표현이 나오고 있다.

▷‘파멸적 소비’는 경제 불안, 지정학적 긴장, 미래에 대한 비관 등으로 충동적이거나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현상을 말한다. 현재 미 국민들의 불안감은 전시의 공황 상태에 가깝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월마트 등 대형 소매업체에서 화장지 등 생활필수품의 재고가 급격히 줄었다. ‘관세 폭탄’이 단순한 엄포가 아닌 현실임이 확인되면서 사재기 품목은 진공청소기 TV 오디오 등의 가전제품과 자동차 등으로 확대됐다.

▷미국인들의 사재기 열풍은 멕시코산 아보카도와 방울토마토, 유럽산 와인, 중국산 의류와 장난감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관세 때문에 미국인들의 올해 가구당 지출이 평균 830달러(약 120만 원)가량 늘어날 것이란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류 인플루엔자(H5N1) 확산으로 달걀값까지 폭등하면서 소비자들의 주름살이 더 깊어졌다. 달걀 절도가 성행하고, 차라리 닭을 키우겠다는 사람들이 늘며 암탉과 닭장을 빌려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던 미국의 초라한 모습이다.

▷패닉에 빠진 사재기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관세가 현실화하기 전에 원자재를 확보하려는 기업 수요 때문에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금값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찍으면서 골드바는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다.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불안 심리로 소비를 늘리면 실제로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른바 ‘자기충족적 예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소비자 개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파멸과 종말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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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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