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을 향해 앞으로"...보사노바의 계절이 불어온다, 리사 오노로부터

2 days ago 5

리사 오노를 모르는 사람도 리사 오노의 목소리는 안다. 세기말, 세기 초를 지나온 한국인이라면 모를 리 없다. 통창 있는 거실에서 여유롭게 커피잔 들어 올리는 아파트 광고, 싱그러운 초록 잎 아래 물광 피부를 자랑하는 화장품 광고…. 당대의 여배우가 주연한 이들 CF에서 우린 그 목소리를 들었고 아직도 그 광고 속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Pretty World (Sá Marina)’ ‘I Wish You Love (Que reste-t-il de nos amours ?)’ ‘Fly Me to the Moon’ ‘The Red Blouse’ ‘Quizas Quizas Quizas’ ‘C'est Si Bon’ ‘Cachito’ ‘Garota de Ipanema (The Girl from Ipanema)’….

수많은 보사노바, 삼바, 볼레로, 샹송의 명곡들을 한국인은 오노의 목소리로 알게 됐다. 여러 장르의 명곡을 청정 필터 같은 그만의 음성으로 걸러 전달한 가수. 리사 오노는 보사노바와 월드뮤직계의 ‘문익점’ 같다. 작곡가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샤를 트레네, 콘수엘로 벨라스케스 같은 외기 힘든 이국적 이름보다, 그 청명한 목소리를 우리 귀는 먼저 삼투압처럼 받아들인다. 비 오는 날 카페에서, 햇볕 든 거실에서, 때론 마음이 힘든 어느 까만 밤을 유영하며….

독보적 음색과 해석력을 가진 가수 리사 오노가 한국을 찾는다. 5월 30일 오후 8시, 31일 오후 7시 서울 마포아트센터, 그리고 6월 1일 오후 5시 대구 아양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최근 서울 용산구에서 만난 오노는 어느덧 60대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해맑은 동안이었고 음성은 ‘I Wish You Love’의 윤기와 우수를 담은 바로 그 목소리였다. 그는 “(편안한 노래를 지향했지만) 내 삶 자체가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원래 삶이 그런 게 아닌가”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보사노바가 제게 사는 법을 가르쳤죠.”

싱어송라이터 리사 오노. / 플러스히치 제공

싱어송라이터 리사 오노. / 플러스히치 제공

▷ 일본인이지만 보사노바의 고향인 브라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죠? 일본과 브라질을 오간 그 시절은 어땠는지, 그 과정에서 어떻게 보사노바를 접하고 음악을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태어났죠. 제 아버지는 상파울루에서 클럽을 운영했고 (브라질의 전설적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바덴 파웰(Baden Powell, 1937~2000)의 에이전트였어요. 자연스레 현지 음악가들이 연습하거나 녹음하는 스튜디오를 아빠 손에 이끌려 드나들었고, 그들 중 다수는 우리 집에 놀러 오기도 했죠. 하지만 정작 아버지는 제가 커서 의사가 되길 바랐어요. 어머니는 달랐죠. 제가 어려서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배우다 말았는데, 어머니는 수줍음이 많고 내향적인 제게 늘 ‘음악으로라도 자신을 표현하라’며 기타라도 배우라고 독려하셨어요.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바덴 아저씨의 집에 자주 갔던 게 큰 도움이 됐어요.

▷ 상파울루에서 리우까지는 가까운 여정이 아닌데 바덴 아저씨를 보러 주말마다 갔군요.

맞아요. 편도 6시간이 걸리는 여정이었는데, 아버지가 모는 차를 타고 거의 주말마다 함께 놀러 갔어요. 전 꼬마였지만 바덴 아저씨가 작곡하고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걸 흡수했죠.

▷ 가족과 함께 일본에 들어온 건 언제였죠?

열두 살 무렵이었죠. 그 당시엔 이미 어딜 가든 꿈을 물어보면 가수라고 답했죠. 1972년쯤일 거예요. 아버지는 도쿄 시내에 라이브 클럽을 열었는데 브라질식 레스토랑과 바를 겸한 곳이었죠. 그때만 해도 도쿄에서 브라질의 음식이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어요. 자연스레 일본을 찾는 브라질 예술가들은 꼭 들렀죠. 브라질 축구 대표팀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사실 스포츠 에이전시도 겸하던 아버지는 당시 펠레가 속해 뛰던 산투스FC의 첫 일본 방문 친선 경기도 주선하셨어요. 그땐 일본에 프로 축구 리그도 없던 시절이어서 경기를 성사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끝내 해내셨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매코이 타이너, 리 릿나워 등 수많은 재즈 연주자들이 본인들의 콘서트가 끝난 이후 저희 클럽에 와서 자유롭게 연주하는 일도 많았지요. 저도 아버지의 클럽에서 보사노바를 연주하고 노래하기 시작했어요.

▷ 앨범 데뷔는 1989년이니 20대 후반에 음반 시장에 나온 셈이네요. 정식 데뷔 전까지는 어떤 나날을 보냈는지요.

일본 곳곳의 라이브 클럽, 재즈 클럽을 돌며 연주했어요. 광고 음악에도 많이 참여했고요. 앨범을 준비한 것은 꽤 오래전부터인데 음반사와 의견이 잘 맞지 않았어요. 회사에선 일본어로 음반을 내야 한다고 했지만, 저는 포르투갈어나 영어를 써서 제대로 된 보사노바, 재즈 앨범을 내기를 강력하게 원했거든요. 그런데 마침 19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월드뮤직 열풍이 불기 시작했어요. 도쿄 신주쿠에 있는 클럽 무대에 주로 오르던 시절인데, 몇 명만이 객석에 있던 곳에 하루가 다르게 관객 수가 늘어나는 게 보였죠. 그러다 MIDI라는 음반사에서 제안이 온 거예요. 바로 사카모토 류이치 씨가 다른 프로듀서들과 만든 회사였죠. 미야타 시게키 씨를 비롯한 프로듀서들은 꼭 포르투갈어로 된 브라질 음악을 CD로 내고 싶다는 저의 생각을 흔쾌히 받아들여 줬죠.

브라질의 전설적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바덴 파웰(1937~2000). 리사 오노는 그가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많은 것을 익혔다고 한다.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브라질의 전설적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바덴 파웰(1937~2000). 리사 오노는 그가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많은 것을 익혔다고 한다.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 1994년에는 보사노바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1927~1994)과 합작했죠?

네. 제 여러 앨범에서 프로듀서를 맡아주신 마리오 아주네 씨가 놀랍게도 ‘꼭 원한다면 내가 조빙 쪽과 연락해 보겠다’고 주선에 나섰고 뜻밖에도 진짜로 조빙 님과 연락이 닿았어요. 제가 그의 곡 ‘Estrada Branca(하얀 길)’을 부르고 싶다고 했는데 조빙 님이 수락했고 심지어 리우에 있는 그의 자택으로 초대받았죠. 제겐 말 그대로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어요. 조빙이 저의 노래에 크게 흡족해하면서 아드님(파울루 조빙)과 플루트 연주자(다닐루 카이미)도 바로 전화해서 불러주셨죠. 원래는 조빙과 저, 이렇게 둘이서만 녹음하려 했는데 일이 커지기 시작했어요.

▷ 조빙의 말년에 그분과 작업한 것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 같은데요.

네. 감사한 일이죠. 조빙은 놀랍고 매력적이며 음악을 깊이 사랑하는 분이었어요. 그랜드 피아노가 놓인 창가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던 게 생생해요. 그 나무로는 많은 새가 날아들었는데 특히 저희가 연주를 시작하면 거기 화답이라도 하듯 함께 노래하던 새들이 떠올라요.

▷ 조빙이 건넨 조언이나 그가 한 말 중 인상적인 게 있다면요.

제가 ‘Estrada Branca’를 노래하다 어떤 부분을 계속 원음보다 반음 내려서 불렀어요. 재즈적인 접근이었고 의도적인 블루노트(blue note)였죠. 하지만 조빙은 원곡대로 온음으로 불러주길 고집했어요. 원래는 본인의 꿈이 클래식 작곡가였다고 하면서. 보사노바 하면 편안하고 여유롭고, 그래서 음악적으로도 유연하리라 생각하기 쉬운데 조빙의 철학과 고집은 완고했어요.

또, 이 곡의 마지막 소절을 함께 녹음하면서 조빙이 계속 장난쳤던 기억이 나요. (이별의 아픔 속에 길을 걷는 화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곡인데) 마지막 줄이 ‘Vou caminhando com vontade de morrer(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걷네)’였죠. 그런데 조빙이 ‘죽고 싶다는’이란 부분을 ‘안 죽고 싶다는’이나 ‘놀고 싶다는’ 등으로 바꾸는 식으로 계속 녹음 중에 장난을 쳤어요. 결국엔 제대로 녹음하자는 저의 정색과 성화에 원곡대로(‘죽고 싶다는’) 녹음을 마쳤고 여러분이 지금 들으시는 버전이 됐어요. 그가 이미 많이 편찮으셨다는 걸 안 것은 녹음을 마치고 몇 달 뒤였어요. 큰 충격을 받았죠. 그렇게 그는 마지막 길을 가셨어요.

보사노바 음악의 대부 안토니오 카를루스 조빙(1927~1994).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보사노바 음악의 대부 안토니오 카를루스 조빙(1927~1994).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당신의 음악은 구김살 없는 목소리와 편안한 가창으로 유명하죠. 하지만 노래를 해본 사람은 알 거예요. 호흡을 길고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그렇게 편안하게 들리도록 부르는 건 사실 외유내강의 기술과 미덕을 가져야 하고 굉장히 어려운 일이란 걸요.

그래요? 그렇게 들어주시면 다행이고 감사한데요. 하지만 제겐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물론 지난 35년간 끊임없이 노래하는 걸 스스로 배우고 익혀온 것도 사실이에요. 어떤 노래 한 곡을 제대로 부르려면 그 한 곡을 몇 주고 몇 달이고 반복해 들으며 분석해야 하죠. 그 노래와 사랑에 빠지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 보사노바와 브라질 음악에 천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신의 디스코그래피를 더 들여다보면 프랑스, 이탈리아, 라틴, 중동 등 정말 다양한 지구상의 음악들을 당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왔잖아요.

10집 ‘Bossa Carioca’(1998년)를 조빙의 가족(파울로 조빙, 다니엘 조빙)과 함께 만든 뒤에 친구 하나가 ‘(브라질에만 머물지 말고) 음악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때?’ 하고 조언했죠. 브라질 음악과 재즈의 기본 정도는 알았지만 비틀스, 카펜터스 같은 팝을 비롯해서 다른 장르에 대해서는 지식이 많이 부족했거든요. 1930, 40년대 미국의 재즈 스탠더드에 집중한 ‘Dream’(1999년)을 시작으로 해서 하와이 음악, 샹송, 칸초네, 그리고 아프리카, 아랍, 아시아의 음악을 다룬 앨범들로 넓혀 갔죠.

▷ 그렇게 다양한 지역과 장르의 음악을 보사노바라는 필터로 재해석해 걸러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보사노바는 일단 가지고 있는 리듬적 특성이 강하잖아요.

재밌는 게 뭔지 아세요? 제가 뒤늦게 미국 전통의 블루그래스 음악에 대해 공부하면서 실은 블루그래스가 보사노바를 포함한 브라질의 현대 음악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브라질 북부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블루그래스를 연주하는 데 쓰이던 아코디언이나 바이올린이 자연스레 브라질의 음악적 언어에 추가됐다는 것을요. 보사노바 밖으로 음악 탐험을 떠났는데 결국 보사노바로 돌아오는 느낌은 흥미로웠죠. 제가 찾아 나선 그 모든 장르가 실은 이미 보사노바 안에 흡수돼 들어있었던 거니까요.

싱어송라이터 리사 오노. / 플러스히치 제공

싱어송라이터 리사 오노. / 플러스히치 제공

▷ 당신이 부른 곡 여럿이 한국의 고급 아파트나 화장품 광고에 삽입됐다는 것, 알아요?

아, 그래요? 잘 몰랐어요. (광고들을 유튜브에서 찾아서 보여주자) 기쁘네요. 일본에서 학교 다니던 시절에 한 시간씩 버스를 타고 통학했어요. 아버지가 사주신 워크맨에 제가 좋아하는 곡을 꼭꼭 담은 카세트테이프를 넣고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생각하곤 했죠. 이 좋은 곡들을 버스에 타고 있는 이 모든 사람과 나누고 싶다고. 외롭게 저 혼자 노래 듣는 대신, 모든 사람이 이 음악과 함께, 나와 함께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그 꿈이 이뤄진 거잖아요.

▷ 요즘 푹 빠져 있는 것들이 있다면요?

피아노 연주요. 센조쿠 음대에서 ‘미국 음악과 재즈’라는 과목을 수강하며 새삼스레 다시 피아노를 배우고 연습하고 있거든요. 기타는 늘 연주해 왔으니 익숙하죠. 그에 비해 피아노는 좀 더 큰 소리, 충만한 화음으로 저를 감싸줘서 연주할 때 치유되는 느낌이 들어요.

▷ 올해와 내년의 계획은요?

내년쯤에 신작을 내려고 준비 중이에요. 그동안 실황 녹음도 해뒀고 신곡들도 다듬어 왔거든요. 새로 보여드릴 것, 들려드릴 것이 아직 아주 많답니다.

▷ 평생을 보사노바에 투신했잖아요. 한 생을 바칠 만큼 보사노바가 가진 결정적 매력은 뭘까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착한 음악. 아주 가볍고 산뜻한 공기와도 같죠. 당신이 느끼는 것을 쉽게 담을 수 있어요. 로큰롤이나 삼바처럼 꼭 강렬하거나 정열적일 필요는 없죠. (보사노바는) 어딘가 다른 곳으로 듣는 사람을 인도해요. 마음이 말 그대로 움직이는, 그런 멋진 느낌을 언제든 선사하죠.

▷ 당신의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져요. 정작 당신의 삶과 일상은 어떤가요. 노래만큼 편안한가요?

하하. 그럴 리가요. 누구나 그러하듯 저 역시도 이런저런 사고와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왔죠. 하지만 그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너무 깊이 받아들이지는 않으려 늘 노력해요. 그런 자세야말로 브라질 문화와 브라질 음악이 제게 가르쳐준 것들, 선물해준 것들이거든요. 보사노바는 꼭 이렇게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뿐이다. 그러니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 햇살을 향해서 앞으로.'

싱어송라이터 리사 오노. / 플러스히치 제공

싱어송라이터 리사 오노. / 플러스히치 제공

임희윤 음악평론가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