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고 싶다"며 아내 무덤 파헤친 男…꺼낸 물건 정체가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1 day ago 8

무덤의 주인이었던 엘리자베스 시달을 모델로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가 그린 작품 '오필리아'의 일부.

무덤의 주인이었던 엘리자베스 시달을 모델로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가 그린 작품 '오필리아'의 일부.

1869년 10월 5일의 깊은 밤, 영국 런던 북부에 있는 하이게이트 묘지. 흔들리는 모닥불 아래, 땀에 흠뻑 젖은 남자들이 흙을 퍼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파내는 건 7년 전 세상을 떠난 한 여성의 무덤. “관 속에 있는 물건 하나를 꺼내달라”는 어떤 남자의 은밀한 부탁 때문이었지요.

얼마나 땅을 팠을까요. 마침내 관이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 사이에서는 작은 탄식이 새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열린 관 뚜껑. 전설에 따르면, 당시 작업자들은 놀라운 광경을 봤다고 합니다. “여성이 죽어서 묻힌 지 7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그녀의 몸은 썩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은 오히려 세상을 떠날 때보다 훨씬 길어져 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쨌거나 작업자들은 의뢰를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여성의 곁에 있는 노트를 꺼내 남자에게 전달한 겁니다.

떨리는 손으로 무덤에서 파낸 노트를 받아 든 남자. 그는 노트에 적힌 내용을 이용해 부와 명예를 얻으며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남자의 마음은 점점 죄책감과 불안, 광기로 물들게 되는데…. 그의 이름은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1828~1882). 당대 영국 최고의 화가 중 하나이자 탁월한 시인이었고, 죽은 뒤에는 많은 소설과 영화의 소재가 된 사람이었으며, 무덤에 묻혀 있던 여성의 남편이었던 그 남자. 로세티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어린 왕자, 로세티

로세티가 19세때 그린 자화상(1947).

로세티가 19세때 그린 자화상(1947).

술탄(이슬람 국가의 지도자). 학창 시절 로세티의 친구들은 로세티를 농담 삼아 그렇게 불렀습니다. 명령 한마디만 하면 하인들이 달려오는 술탄처럼, 로세티가 한 마디만 부탁하면 수십 명의 친구들이 앞다퉈 그의 부탁을 들어주려고 달려왔기 때문입니다. 과장이 좀 섞여 있는 별명이었지만 그만큼 로세티는 매력적이고 인기 많은 학생이었습니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로세티는 잘생긴 얼굴의 미소년이었습니다. 그의 다정다감한 말투 속에는 톡톡 튀는 재치와 유머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이국적인 혈통과 출신이 신비로운 매력을 더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에서 시인으로 활동하다 정치적인 탄압을 받아 영국으로 망명한 대학 교수였거든요. 로세티의 누나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로세티는 가족과 친구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았다. 마치 어린 왕자와도 같았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든 로세티를 한 번 만나면 그의 매력에 푹 빠졌다.”

시인이었던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로세티는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글을 잘 썼고, 그림도 잘 그렸습니다. 화가가 될지 시인이 될지 고민할 정도로요. 로세티는 그중 화가의 길을 택했습니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세계를 그려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열일곱 살의 나이에 왕립아카데미에 입학해 미술 공부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왕립아카데미의 가르침은 따분했습니다. 로세티에게 왕립아카데미가 추구하는 그림은 고지식하고 쓸데없이 까다로우면서도 감상적인, 말하자면 ‘구린’ 그림으로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로세티는 존 에버렛 밀레이를 비롯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젊은 아카데미 학생들을 끌어모았습니다. “그림에 ‘오버’ 좀 하지 말자. 르네상스 시대, 라파엘로 이전의 자연스러운 그림으로 돌아가자.” 눈부신 색채, 과장되지 않았지만 극도로 섬세하고 세밀한 표현을 추구하는 ‘라파엘(라파엘로)전(前)파’의 탄생이었습니다.

성모마리아의 소녀 시절(1849). 중세 종교화에서 성모 마리아의 어린 시절은 흔한 주제였다. 하지만 로세티는 자신의 가족을 모델로 삼아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그렸고, 이는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성모 마리아는 그의 누나,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인 성녀 안나는 어머니를 모델로 그려졌다. /테이트

성모마리아의 소녀 시절(1849). 중세 종교화에서 성모 마리아의 어린 시절은 흔한 주제였다. 하지만 로세티는 자신의 가족을 모델로 삼아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그렸고, 이는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성모 마리아는 그의 누나,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인 성녀 안나는 어머니를 모델로 그려졌다. /테이트

주님의 여종을 보라(1850).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의 임신 소식을 전하는 순간을 묘사한 '수태고지'를 모티프로 그린 작품이다. 성모 마리아는 기도하기 위해 무릎을 꿇은 대신 구겨진 침대에 누워 길고 주름진 하얀 잠옷을 입고 있는데, 이는 전형적인 신혼부부의 모습이었다. 반면 가브리엘은 날개 없이 헐렁한 하얀 가운을 입고 허벅지와 엉덩이를 드러내고 있다. 두 인물 모두 영적인 존재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살아있는 육체를 지닌 것처럼 보인다. 신성 모독이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로세티는 성경을 모티프로 한 그림을 거의 그리지 않게 되었다. /테이트

주님의 여종을 보라(1850).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의 임신 소식을 전하는 순간을 묘사한 '수태고지'를 모티프로 그린 작품이다. 성모 마리아는 기도하기 위해 무릎을 꿇은 대신 구겨진 침대에 누워 길고 주름진 하얀 잠옷을 입고 있는데, 이는 전형적인 신혼부부의 모습이었다. 반면 가브리엘은 날개 없이 헐렁한 하얀 가운을 입고 허벅지와 엉덩이를 드러내고 있다. 두 인물 모두 영적인 존재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살아있는 육체를 지닌 것처럼 보인다. 신성 모독이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로세티는 성경을 모티프로 한 그림을 거의 그리지 않게 되었다. /테이트

새로운 것들이 세상에 나올 때면 늘 그렇듯이, 처음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사람들이 특히 문제 삼았던 건 로세티의 그림들 속 성모 마리아의 얼굴. “저런 여자가 어떻게 성모 마리아야? 평범하기 짝이 없는, 품격 없는 얼굴인데….”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를 비롯한 당시 사람들은 로세티의 그림을 보고 이렇게 혹평했습니다. 성모 마리아를 순결하고 이상적인, 말 그대로 성스러운 여인으로 그렸던 다른 그림들과 달리 로세티의 성모 마리아는 현실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라파엘전파 작품들이 주는 새로운 매력에 익숙해졌습니다. 점차 라파엘전파는 영국 미술의 대세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중심에는 특유의 매력으로 동료 화가들을 끌어모은 로세티가 있었습니다.

시달, 마음의 여왕

“야, 대박! 나 진짜 장난 아니게 예쁜 사람 데려왔어. 완전히 여왕 같아. 키도 엄청 크고…. 분위기 장난 아니야.”

1849년, 라파엘전파 화가들이 모인 자리. 뒤늦게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스물두 살의 화가 월터 데버럴은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뭐야, 누구? 자세히 좀 얘기해봐.” 동료들의 재촉에 데버럴은 ‘썰’을 풀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어마어마하게 예쁜 여성을 마주쳤다는 것. 그림 모델을 서달라고 부탁했는데 거절당했다는 것. 그리고 간곡한 부탁 끝에 모델로 모실 수 있게 됐다는 것. 그녀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시달, 나이는 스무 살, 모자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까지요.

월터 데버렐의 '십이야'. 시달을 모델로 왼쪽의 붉은 옷을 입은 여성을 그렸다. 데버렐 역시 시달에게 마음이 있었지만, 로세티에게 사랑을 빼앗기고 만다. 안타깝게도 데버렐은 1854년 27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요절한다.

월터 데버렐의 '십이야'. 시달을 모델로 왼쪽의 붉은 옷을 입은 여성을 그렸다. 데버렐 역시 시달에게 마음이 있었지만, 로세티에게 사랑을 빼앗기고 만다. 안타깝게도 데버렐은 1854년 27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요절한다.

키가 크고 창백한 피부에 불꽃처럼 붉은 머리카락, 독특하게 아름다운 얼굴. 시달은 라파엘전파 화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모델이 됩니다. 특유의 아름다움과 매력적인 성격에 더해 모델로서의 ‘프로 정신’ 때문이었습니다. 존 에버렛 밀레이의 대표작 ‘오필리아’의 모델을 설 때 차가운 물에 너무 오래 몸을 담갔다가 죽을 뻔했지만, 그 과정에서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았던 일이 유명합니다. 다만 이런 ‘라파엘전파의 뮤즈’ 역할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로세티가 시달과 사귀면서 다른 화가들의 작품에 모델을 서는 걸 금지시켰거든요.

로세티는 시달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훗날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내 운명은 정해졌다. 전생에서부터 그녀를 사랑할 운명이었던 느낌이었다.” 로세티는 시달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했습니다. 시달 역시 매력적인 로세티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금세 연인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로세티는 시달을 모델로 많은 작품을 그렸고, 그녀에게 문학과 그림을 가르쳤습니다. 머지않아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하게 됐습니다.

책을 읽는 시달(1854).

책을 읽는 시달(1854).

하지만 로세티는 결혼을 자꾸만 미뤘습니다. 핑계는 집안의 반대. 당시 유럽에서 모델은 ‘옷을 벗고 다른 사람 앞에 서는 직업’이란 이유로 비천한 직업 취급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시달은 별 볼 일 없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영국 사회에서 이런 신분을 넘어선 결혼은 금기시되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줘, 집에 잘 말해 볼 테니까….” 로세티는 10년이나 이런 공허한 약속만 반복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로세티는 허구한 날 바람을 피웠습니다. 그 상대 중 대표적인 사람이 하층 계급 출신의 매력적이고 육감적인 여성, 패니였습니다. 패니의 말투는 거칠고 상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재미있고 편안했습니다. 모델로서도 패니는 시달과 완전히 다른 매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로세티는 그녀의 고운 이목구비와 풍성한 머리카락, 관능을 그렸습니다.

보카 바치아타(1859). 패니를 모델로 그린 작품이다. 로세티는 시달을 그릴 때는 아름답고 영적인 존재로 그린 반면, 패니는 관능적인 욕망과 매력의 이상형으로 그렸다. 보카 바치아타는 '키스를 한 입술'이라는 뜻. 분홍빛 입술과 풍성한 붉은 머리카락, 풀린 단추 사이로 드러난 맨살이 관능적인 매력을 상징한다. 그 앞에 놓인 사과도 선악과, 즉 유혹을 상징한다. 작품은

보카 바치아타(1859). 패니를 모델로 그린 작품이다. 로세티는 시달을 그릴 때는 아름답고 영적인 존재로 그린 반면, 패니는 관능적인 욕망과 매력의 이상형으로 그렸다. 보카 바치아타는 '키스를 한 입술'이라는 뜻. 분홍빛 입술과 풍성한 붉은 머리카락, 풀린 단추 사이로 드러난 맨살이 관능적인 매력을 상징한다. 그 앞에 놓인 사과도 선악과, 즉 유혹을 상징한다. 작품은 "아름답다" "그림 주인이 그림 속 여성의 입술에 키스할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이 작품을 그릴 때 로세티는 시달과 약혼 중이었다. /보스턴미술관

시달이 로세티의 외도를 모를 리 없었습니다. 원래도 시달은 몸이 약했습니다. 여기에 극심한 스트레스가 겹치면서 그녀의 건강은 갈수록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시달이 오늘내일해. 언제 죽을지 모르겠어.” 사람들은 수군댔습니다. 그제야 로세티는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시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달이 죽으면 그 죄책감을 견디기 힘들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어쨌거나 두 사람은 1860년 결혼식을 올립니다. 로세티의 나이 서른둘, 시달의 나이 서른하나. 두 사람이 결혼을 약속하고 10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하지만 시달의 건강은 계속 나빠졌습니다. 딸을 임신했다가 사산한 사건은 시달의 몸과 마음에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시달은 불면증과 만성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평소 먹던 마약성 진통제의 양을 계속 늘렸습니다. 그리고 1862년, 시달은 진통제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공식적으로 이 사건은 사고로 처리됐지만, 사실은 자살이었습니다. 결혼 후 채 2년도 되지 않아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레기나 코르기움(1860). 요하네스버그 미술관 소장품으로, 현재 세종미술관에 전시중인 그림이다. 레기나 코르디움은 '마음의 여왕'이라는 뜻이다. 시달을 모델로 그린 이 작품은 시달과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한 작품이지만, 그런것 치고 그림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녹색이 많이 들어간 피부는 시달의 죽음을 예고하는 듯하다. 팬지꽃 역시 당시 영국에서는 추모의 상징 중 하나로 취급됐다.

레기나 코르기움(1860). 요하네스버그 미술관 소장품으로, 현재 세종미술관에 전시중인 그림이다. 레기나 코르디움은 '마음의 여왕'이라는 뜻이다. 시달을 모델로 그린 이 작품은 시달과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한 작품이지만, 그런것 치고 그림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녹색이 많이 들어간 피부는 시달의 죽음을 예고하는 듯하다. 팬지꽃 역시 당시 영국에서는 추모의 상징 중 하나로 취급됐다.

로세티는 깊은 죄책감과 절망에 빠졌습니다. 슬픔에 잠긴 그는 시달의 시신 옆에 자신이 쓰고 있던 미발표 시집의 원고를 넣은 뒤 그 위를 시달의 붉은 머리카락으로 덮었습니다. 예술과 영감의 원천이었던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자신의 예술혼도 묻어버리겠다는 듯한, 애달프고 비극적인 작별의 의식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야 진심으로 후회한 남자. 여기서 끝났다면 이야기는 나름 애절한 사연으로 남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보다 늘 잔혹한 법이지요.

무덤을 파헤치다

아내가 죽은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로세티는 애인 관계였던 패니와 함께 살기 시작합니다. 로세티를 사랑했던 패니는 그가 결혼한 뒤 상심해 다른 남자와 결혼했지만, 서로 잘 맞지 않아 이혼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세티는 예술적·경제적 전성기를 맞습니다. 그의 작품들이 영국 사회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한 겁니다. 한동안 쓰지 않았던 시(詩)도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레이디 릴리스(1867). '팜므 파탈'의 상징인 릴리스(릴리트)를 그린 작품으로, 패니를 모델로 삼았다. 다만 그림을 주문한 사람이

레이디 릴리스(1867). '팜므 파탈'의 상징인 릴리스(릴리트)를 그린 작품으로, 패니를 모델로 삼았다. 다만 그림을 주문한 사람이 "너무 이미지가 세속적이니 얼굴을 바꿔달라"고 한 탓에 로세티는 다른 여성을 모델로 그림을 새로 그려야 했다(워싱턴 델라웨어미술관 소장본). 이 그림은 패니를 모델로 그린 원본이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아무리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건 로세티가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많은 걸 타고난 덕분에 주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로세티는,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였습니다. 그가 시달을 사랑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시달보다 그가 더 사랑했던 건, ‘시달을 사랑하는 나 자신’이었습니다.

그래서 로세티는 시달을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 작품 속의 완벽한 모습으로 그리면서도 그녀의 실제 모습과 고통, 요구에는 무심했습니다. 자주 바람을 피웠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로세티에게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보다 자기 내면의 허기를 채우고 ‘사랑에 빠진 나의 모습’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었지요.

비타 베아트리스(1864~1870). 로세티는 자신을 '신곡'을 쓴 이탈리아 시인 단테의 정신적 후손으로 여겼다. 이탈리아 출신의 시인이었던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로 지은 영향이다. 로세티의 마음 속에서 자신은 단테, 시달은 단테가 사랑했던 여인인 베아트리스였다. 

시달이 죽은 뒤 로세티는 갑작스레 시달을 그리는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래서 예전에 그리다 만 시달의 초상화를 재구성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에서 시달은 죽음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영적 변화'의 상태에서 황홀경에 빠진 듯한 모습으로 묘사된다./테이트

비타 베아트리스(1864~1870). 로세티는 자신을 '신곡'을 쓴 이탈리아 시인 단테의 정신적 후손으로 여겼다. 이탈리아 출신의 시인이었던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로 지은 영향이다. 로세티의 마음 속에서 자신은 단테, 시달은 단테가 사랑했던 여인인 베아트리스였다. 시달이 죽은 뒤 로세티는 갑작스레 시달을 그리는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래서 예전에 그리다 만 시달의 초상화를 재구성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에서 시달은 죽음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영적 변화'의 상태에서 황홀경에 빠진 듯한 모습으로 묘사된다./테이트

아내의 무덤을 파헤친다는 충격적인 사건을 벌인 건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시를 다시 쓰기 시작한 뒤 로세티의 머릿속에는 자꾸만 시달의 관에 함께 묻었던 원고가 맴돌았습니다. ‘아, 내가 거기 적었던 시들은 정말 뛰어났는데…. 그 시를 다시 떠올릴 수만 있다면 시인으로서도 성공할 수 있을 텐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로세티. 시인으로서의 인정에 목말랐던 그는 결국 자기 합리화를 해내고야 맙니다. ‘그래, 시달도 용서해 줄 거야.’ 그렇게 아내가 죽은 지 7년째 되던 해, 로세티는 인부들을 동원해 묘를 파헤치고 시를 적어둔 노트를 도로 꺼냅니다.

이 사건은 훗날 영국 사람들의 입에 전설처럼 오르내리게 됩니다. ‘관을 열어보니 시달은 세상을 떠날 당시와 똑같이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관은 그녀의 머리에서 자라난 황금빛 머리카락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워낙 사건 자체가 충격적이어서 사람들의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했습니다. 실제로 찾아낸 원고는 시달의 유해에서 스며 나온 습기에 젖어 곰팡이와 벌레로 손상된 상태였고, 의사는 원고에 밴 썩은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소독해야만 했습니다. 2주간의 소독을 거쳐 원고를 받은 로세티는 간신히 내용을 옮겨 적은 뒤 원본을 불태워버렸다고 합니다. 종이에 남은 죽음의 흔적을 차마 견딜 수 없었던 거지요. 그리고 로세티는 그 시를 고치고 덧붙여 책으로 펴냈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서 펴낸 시집에 대한 반응은 어땠을까. 일단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로세티가 아내의 무덤을 파헤쳤다는 사실은, 그가 죽은 뒤에야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로세티 생전 영국 사람들은 이런 끔찍한 얘기를 까맣게 몰랐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비평가들은 로세티의 시를 극찬했습니다. “진정한 상상력에 불을 붙였다.”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시로 미묘함과 생생함을 담았다.” 시집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축복받은 여인(1871~1878). 시의 내용처럼, 죽어서 천국에 간 여인이 아직 살아있는 연인을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하버드대 미술관

축복받은 여인(1871~1878). 시의 내용처럼, 죽어서 천국에 간 여인이 아직 살아있는 연인을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하버드대 미술관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집에는 마치 시달의 관점에서 로세티를 본 듯한 시, ‘축복받은 여성’(The Blessed Damozel)도 실렸습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여성이 천국에서 연인을 내려다보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내용이었습니다. 시는 이렇게 끝납니다.

(이전 내용 생략)

연인이 죽어서 천국에 왔을 때 나는 신께 이렇게 부탁할 거야.
그와 함께 살고 싶다고, 이전처럼 사랑 안에서, 이제부터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고.

그녀는 말했지. 슬프기보다는 온화하게- “이 모든 건 그가 오면 이뤄질 거야.”
그리고 빛이 그녀를 향해 다가왔고, 천사들이 힘찬 날갯짓을 하며 곁에 다가왔네.
그녀의 눈은 기도로 가득했고, 그녀는 미소를 지었어. (나는 그녀가 미소 짓는 걸 봤어.)

곧 그녀와 천사들, 빛은 멀어져 사라졌지.
하지만 그녀는 팔을 난간에 길게 뻗고 손에 얼굴을 묻은 채 울었네. (나는 그녀의 울음소리를 들었어.)

아무래도 가증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만, 그 뒤로도 로세티의 화려한 삶은 계속됐습니다. 로세티는 그림과 시에 모두 통달한 예술의 거장으로 취급받았습니다. 경제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바람기도 여전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머리가 빠지고 배가 나왔지만 여전히 매력적이었던 그는 버릇을 못 고치고 절친한 친구의 아내와 신나게 바람을 피웠습니다.

조지 프레드릭 와츠가 그린 1871년의 로세티.

조지 프레드릭 와츠가 그린 1871년의 로세티.

페르세포네(1874). 그리스 신화 속 하데스가 납치해 결혼한 여인 페르세포네를 그린 작품이다. 모델은 친구의 아내이자 불륜 상대였던 제인 모리스.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상류층과 결혼한 그녀는 훗날 '마이 페어 레이디'의 원작 소설 '미스 브라운'으로 명성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고, 로세티와 불륜을 일삼았다.

페르세포네(1874). 그리스 신화 속 하데스가 납치해 결혼한 여인 페르세포네를 그린 작품이다. 모델은 친구의 아내이자 불륜 상대였던 제인 모리스.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상류층과 결혼한 그녀는 훗날 '마이 페어 레이디'의 원작 소설 '미스 브라운'으로 명성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고, 로세티와 불륜을 일삼았다.

하지만 로세티도 사람인 만큼 속이 멀쩡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동안 누적된 불안과 우울, 죄책감으로 그의 몸과 마음은 조금씩 망가져 갔습니다.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했던 그는 수면제를 먹기 시작했고, 수면제의 쓴맛을 지운답시고 위스키로 약을 넘겼습니다. 결국 그는 심각한 알코올 중독 상태에 빠지게 됐고, 급기야 환각을 보는 등 심각한 정신질환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그리고 1882년, 그는 약물 남용으로 신장이 망가져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로세티, 그 퇴폐적 아름다움

오늘날 로세티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먼저 영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그룹 중 하나인 라파엘전파를 이끈 리더로 꼽힙니다. 다소 퇴폐적이지만 아름다움 그 자체를 극단적으로 추구한 유미주의(唯美主義)의 선구자이자, 회화와 시를 결합한 독특한 예술가로도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한편으로 그의 삶에 있었던 우여곡절은 소설·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사랑받는 사람(1865~1866). 가운데 여성은 패니를 모델로 그렸다. /테이트

사랑받는 사람(1865~1866). 가운데 여성은 패니를 모델로 그렸다. /테이트

무엇보다도 그의 그림은 그 자체로 인기 만점입니다. 지금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 나와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미술관 소장품전, 수많은 대가들의 작품 중에서도 로세티의 ‘레기나 코르디움’이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로세티의 작품들은 단순히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가 아닙니다. 단순히 ‘예쁨’, ‘사실성’으로만 따지면 로세티보다 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미묘한 에너지, 사연이 있는 듯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로세티와 시달의 이야기를 전혀 몰라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 아름다움은 독특하고 강렬합니다. 그건 로세티가 그린 그림 속 여성이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모두 그가 실제로 사랑했던 여성들이기 때문일 겁니다.

피아 데 톨로메이(1868). 제인 모리스와 불륜을 저지르기 시작할 무렵 그녀를 모델로 그린 작품이다. 단테의 '신곡' 연옥편에 나오는 이야기를 모티프로 그렸는데,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여성은 자신을 감금한 남편을 독살한 죄로 연옥에 갇혀 있다. 그는 이를 통해 친구인 윌리엄 모리스가 제인 모리스를 강제로 붙잡아 두고 있다는 자기기만적인 환상을 세상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전하려고 했다.  /스펜서 미술관

피아 데 톨로메이(1868). 제인 모리스와 불륜을 저지르기 시작할 무렵 그녀를 모델로 그린 작품이다. 단테의 '신곡' 연옥편에 나오는 이야기를 모티프로 그렸는데,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여성은 자신을 감금한 남편을 독살한 죄로 연옥에 갇혀 있다. 그는 이를 통해 친구인 윌리엄 모리스가 제인 모리스를 강제로 붙잡아 두고 있다는 자기기만적인 환상을 세상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전하려고 했다. /스펜서 미술관

로세티의 그림 한 장 한 장에는 그가 겪은 격렬한 사랑과 고통, 갈등이 압축돼 있습니다. 그의 비열함과 후회, 극단적인 자기애, 잔혹함까지요. 그래서 그의 그림을 실제로 마주한 사람들은 어렴풋하게나마 일종의 비극적인 에너지를 느끼게 됩니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말한 그림의 ‘아우라’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단순히 예쁘고 예쁘지 않고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삶의 어떤 순간, 되돌릴 수 없는 이야기와 내 삶이 연결될 때 느껴지는 신비한 힘 말입니다.

사랑은 뭐고 예술은 또 뭔가. 때로는 다른 이의 삶을 철저히 파괴하면서까지 자신의 욕망을 끝없이 좇았던 로세티의 작품은 왜 아름다운가. 좋은 그림은 이처럼 여러 이야기와 질문, 신비로운 힘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볼거리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도, 굳이 미술관을 찾아 수백 년 전 그림 앞에 서게 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이번 기사는 Dante Gabriel Rossetti - Painter and Poet(Jan Marsh 지음)를 중심으로 Rossetti(Evelyn Waugh 지음), Collected Writings of Dante Gabriel Rossetti(Jan Marsh 편집)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 담당 기자가 미술사의 거장들과 고고학, 역사 등을 심도 있게 조명하는 국내 문화 분야 구독자 1위 연재물입니다. 매주 토요일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네이버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미술 소식과 지금 열리는 전시에 대한 심층 분석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 구독 중인 7만여명의 독자와 함께 아름다운 작품과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앞서 다뤘던 화가들의 이야기와 아름다운 그림들은 두 권의 책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과 <명화의 발견, 그때 그 사람>으로 곁에 두고 즐길 수도 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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