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세계지식포럼 개막
대전환 시대, 국가의 흥망 세션
“한국의 역동성이 국가와 사회 간 균형을 이끌어 경제·사회·문화적 기적을 만들어냈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로빈슨 시카고대 교수가 9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에서 한국의 현재 상황에 대해 “한국이 농지개혁, 교육개혁 등을 통해 국가 권력과 사회 권력 사이 균형을 찾아가면서 ‘좁은 회랑’에 진입해 포용적 제도로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며 이같이 평가했다.
노벨경제학상 로빈슨 교수
국가·사회 끝없는 권력견제
美 양극화로 제도 불신 심화
민주적 갈등 해결 어려워져
로빈슨 교수는 국가와 사회가 끊임없는 견제를 통한 균형을 유지하며 좁은 회랑 안에서 경제 성장을 지속하는 것을 의미하는 ‘붉은 여왕 효과’를 한국이 톡톡히 누렸다고 주장했다. 이는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제자리라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고 말한 데서 나온 개념이다.
로빈슨 교수는 또 “무(無)에서 조선과 자동차를 만들어 낸 무한 혁신이 한국 성공의 요인” 이라고 강조했다.
로빈슨 교수는 국가 번영과 제도 간 관계를 입증해 대런 애쓰모글루·사이먼 존슨 메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공동으로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통해 ‘포용적 제도’가 국가의 발전을 이끈다는 사실을 밝히고, 한국과 북한의 경제 발전 격차를 대표적 사례로 제시해 국내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후속작 ‘좁은 회랑(Narrow Corridor)’을 통해서는 국가 권력과 사회 권력이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회랑’ 안에서만 포용적 제도가 등장할 수 있다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날 로빈슨 교수는 한국이 역사적으로 계층적 구조와 함께 공동체적 문화가 공존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공동체 문화의 한 예로 ‘혼문 지키기’가 있다는 농담을 건네 청중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앞서 언론 인터뷰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5번 봤다”고 밝힌 로빈슨 교수가 영화에서 세 명의 주인공이 팬들과 함께 혼문을 지키는 스토리를 한국의 공동체 문화라고 소개한 것이다.
로빈슨 교수는 현재 미국 정치 상황을 ‘통제 불능에 빠진 붉은 여왕’으로 묘사하면서 국제 정세가 매우 위험한 순간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사회적 양극화와 제도의 실패로 갈등 해결이 불가능해졌고 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민주적인 저항마저도 반제도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빈슨 교수는 “북한 체제가 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민이 정권을 전복하는 것”이라고 말해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그는 “북한은 중국이나 베트남이 체제 변화를 통해 엄청난 부를 창출했다는 것을 알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 체제는 제도화돼 있지 않아 변화하면 권력을 잃을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변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이 들고일어나 정권을 차지하거나 국가 간 전쟁을 일으켜 패배하는 경우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소련 붕괴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듯 북한에서도 흥미로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총·균·쇠’ 다이아몬드 교수
팬데믹·기후변화·핵전쟁이
인류 몰락위기로 내몰겠지만
글로벌 협력으로 극복 낙관
장충아레나에서 ‘대전환의 시대, 문명의 몰락과 번영의 길’을 주제로 강연한 재러드 다이아몬드 미국 로스앤젤레스캘리포니아주립대(UCLA) 명예교수는 전 세계를 위협하는 4대 위기로 팬데믹·기후변화·어류 고갈·핵전쟁 위험을 지목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기후변화는 간접적이지만 팬데믹보다 훨씬 심각한 위협”이라며 “기온 상승으로 인한 질병 확산, 식량 생산 감소, 산호초 감소로 인한 쓰나미 피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공해상에서의 물고기 남획으로 자원의 재생 가능성이 붕괴하고 있다”며 “1인당 생선 소비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 같은 전 세계적 위협 요소들에 대한 각국의 협력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다. 그는 “이미 인류는 천연두 퇴치, 오존층 보호 등 여러 글로벌 협력을 실천한 바 있다”며 “중요한 글로벌 과제 해결에 대한 협력을 조심스럽게 낙관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