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현대차 미국 투자의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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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현대차 미국 투자의 나비효과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에 대규모 생산시설을 지으면 미국 시장은 지킬 순 있겠지만 한국 내 산업 공동화를 초래할 수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6일 현대차그룹의 210억달러(약 31조원) 미국 투자 소식을 전하면서 “미국 관세 정책으로 현대차가 공급망을 이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정치권과 시민단체, 노동계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자동차업계에선 다른 얘기가 나온다. 이 분야에 30년 넘게 몸담은 한 관계자는 “20여 년 전 현대차가 미국에 첫 공장을 지었을 때가 떠오른다”고 했다. 2004년 현대차가 앨라배마 공장을 세웠을 때도 똑같은 지적이 쏟아졌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때 우려는 기우였다는 건 몇몇 지표만 봐도 알 수 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차·기아 점유율은 2004년 5.1%에서 지난해 8.3%로 높아졌다. 글로벌 판매 순위도 7위에서 3위로 올라갔다. 일자리는 어떤가. 현대차·기아가 국내에서 고용한 직원은 2004년 8만5470명에서 지난해 11만884명으로 30%가량 늘었다. 그사이 국내 자동차 부품의 미국 수출은 500% 넘게 확대됐다.

앨라배마 공장은 이렇게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메이커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최대 격전지’에 생산시설을 둔 자동차 회사답게 품질과 디자인, 브랜드파워를 키우는 데 더 큰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미국에 둥지를 틀면서 한국 시장에만 머물던 부품사도 미국 시장을 뚫었고, 현대차·기아뿐만 아니라 다른 메이커에도 하나둘 납품하기 시작했다. 현대차그룹이 해외에 뿌린 씨앗이 국내 고용과 산업 생태계를 키우는 ‘나비효과’를 만든 셈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3년 전 방한한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과 면담한 자리에서 “이제는 어디에든 (투자)하는 시대다. 해외에 투자하면 국내에도 고용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 그대로다. 좁디좁은 한국만 바라볼 수 없는 국내 기업에 해외 시장 개척은 숙명이다. 그렇게 해외에서 살길을 찾아야 국내 투자와 고용을 늘릴 실탄이 마련된다. 현대차그룹은 이런 공식을 증명했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올해 국내에 24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사상 최대다.

한국 기업이 해외 투자를 늘리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중대재해처벌법과 주 52시간 근무제 등으로 손발이 묶이는데, 어떤 기업이 한국 투자만 고집할 수 있겠는가. 툭하면 파업으로 위협하는 막강 노조와 사사건건 부딪혀야 하는 자동차업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국 기업들이 해외로 떠난다고 비난하기 전에, 우리 기업들이 한 푼이라도 한국에 더 투자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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