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누굴 원망하겠나”… 이웃 돕다 구순 노모 잃은 아들의 눈물

3 days ago 8

불구덩이서 다시 일어서도록 이재민들 손 잡아줄 때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대형 산불 발생 일주일째인 28일 오전 경북 안동시 안동체육관에 마련된 임시대피소에서 주민 전갑수(89) 씨의 아내 김태순(84) 여사가 맏딸의 안부 전화를 받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난 26일 자택이 불에 타 대피소로 왔다는 전 씨는 “아내가 거동이 불편해 집이 불에 타는 순간 마을 청년들의 도움을 받아 대피소로 몸만 간신히 빠져나왔다”라며 “목숨이라도 성한 게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요양보호사와 3시간 간격으로 아내를 돌봐야 하는데, 나이가 많아 쉽지 않다”라며 “그래도 자녀들이 차례로 돌보러 와줘서 간신히 생활하고 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안동=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대형 산불 발생 일주일째인 28일 오전 경북 안동시 안동체육관에 마련된 임시대피소에서 주민 전갑수(89) 씨의 아내 김태순(84) 여사가 맏딸의 안부 전화를 받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난 26일 자택이 불에 타 대피소로 왔다는 전 씨는 “아내가 거동이 불편해 집이 불에 타는 순간 마을 청년들의 도움을 받아 대피소로 몸만 간신히 빠져나왔다”라며 “목숨이라도 성한 게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요양보호사와 3시간 간격으로 아내를 돌봐야 하는데, 나이가 많아 쉽지 않다”라며 “그래도 자녀들이 차례로 돌보러 와줘서 간신히 생활하고 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안동=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화마(火魔)가 훑고 간 자리가 참혹하다. 8일째 이어진 최악의 영남 산불로 소방 헬기 조종사를 포함해 28명이 숨지고 3만7000여 명이 갈 곳 없는 이재민이 됐다. 국가유산 23개도 피해를 입었다. 천년을 견디어 온 경북 의성의 고찰 고운사 건축물 상당수가 하루 새 잿더미가 됐다. 산불 피해 면적이 서울의 60%다. 의성의 마늘밭, 청송 사과 농장, 영양 고추밭, 영덕의 최대 송이버섯 산지가 타버렸다. 영덕 국사봉의 송이 재배 농민들은 “송이가 다시 나려면 50년 넘게 걸린다”며 망연자실해한다.

피해 지역 주민들은 대개 재난 문자 확인에 서툴고 몸놀림이 둔한 고령자들이다. 사람 뛰는 속도보다 빨랐다는 괴물 산불에서 구사일생한 이들은 “이웃 덕분에”라고 입을 모았다. 경북 안동의 임순희 씨(75)는 불길이 번진 집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데 어떤 젊은이가 차를 끌고 나타나 “어르신 얼른 타세요” 해서 살았단다. 영덕 주민 오순자 씨(83) 등 5명도 차로 집집을 돌던 권오삼 씨(70) 부자 덕에 불길을 피했다. 영양군의 한 주민은 구순 넘은 노모의 대피를 이웃집에 부탁한 후 다른 주민들 대피를 돕다 그만 노모를 잃었다. 그는 “엄마를 못 지킨 아들”이라 자책하면서도 남 탓은 하지 않았다. “평생 상상도 못 했던 산불이었다. 다들 경황이 없었을 텐데 누굴 원망하겠나.”

찔끔 내리다 만 비가 사나운 불길은 못 잡아도 바싹 마른 대기를 적셔 도깨비처럼 날아다니던 불똥의 힘은 빼놓았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어제도 진화요원 5500여 명이 일주일 넘게 쪽잠을 자가며 벌인 사투에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하늘과 땅에서 총력전을 펼쳤다. 동아일보 취재진이 산불 현장에서 만난 진화요원들 중엔 이번 산불로 집을 잃고 신발만 챙겨 나온 이도 있었고, 형님처럼 따르던 동료를 진화 작업 도중 잃은 56세 대원도 있었다. 그래도 “슬퍼할 겨를이 없다. 내 자식 내 후손들도 쓸 산림인데 나무 한 그루라도 지켜내야지, 이 마음 하나로 버틴다”고 했다.

집도, 가재도구도 다 타버리고 더 잃을 것도 없는 이재민들을 자원봉사자들이 돕고 있다. “남 일 같지 않아서” “내 부모님 같아서” 달려온 이웃들이 독한 산불 연기를 뒤집어쓴 채 식사를 챙기고 잠자리를 돌본다. 뒷산 잔불이라도 끄겠다며 달려온 고령의 의용소방대원들도 있다. 그 덕분에 기운을 차린 이재민들이 검게 타버린 밭으로 나가 둘러보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가꿔온 것들을 한순간에 잃고도 서로 손 잡아주며 다시 일어설 채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절감한다. 여야가 벌이는 ‘재난 예비비’ 공방이 얼마나 공허한가를. 남을 돕다 노모 잃고도 누굴 원망 않고 자책하는 아들의 눈물은 우리 모두가 닦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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