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할머니가 불붙은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유명을 달리했고, 80대 노인 3명은 대피 차량이 불티로 폭발하면서 함께 산화하고 말았다. “엄마 얼마나 뜨거웠을까” 오열하는 유족 인터뷰를 보며 가슴이 먹먹해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더욱 속상했던 건 이 참화(慘火)가 고작 라이터를 켠 성묘객, 예초기 불티를 방치한 작업자 등 기본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의 실수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산불은 변하고 있다. 앞으로 더 자주, 더 크게 일어날 것이다. 기후변화로 한반도의 봄이 고온·건조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산불도 강한 바람, 건조한 공기, 높은 기온 등 3중 악조건 탓에 더 크게 번졌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경북 의성 산불의 경우 안동을 거쳐 영덕으로 확산하는 데 고작 한나절밖에 안 걸렸다. 빠르게 번지는 불은 당연히 끄기 어렵다. 앞으로 산불은 이전과 달리 많은 사상자를 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모습은 달라진 게 없다. 2024년 산불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산불의 원인은 입산자 실화(失火)가 31%, 논밭두렁이나 쓰레기 소각 24%, 담뱃불 실화 7%, 성묘객 실화 3%다. 10년간 최소 65%의 산불은 사람의 부주의로 난 셈이다.여전히 몰지각한 불법행위도 쉽게 목격된다. 산 인근에서 농산부산물과 쓰레기를 소각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엄연히 불법인데 농민들 사이에선 단속원들 퇴근 이후 소각하면 단속을 피할 수 있다는 팁까지 돈다고 한다. 담배꽁초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사람도 여전하다. 화기 사용이 금지된 산에서 야영하며 불 피운 영상을 자랑처럼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는 유튜버도 있다.
어릴 때부터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산불 예방 교육을 통해 잘못된 행동과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명확히 가르쳐야 한다. 어린이 불장난으로 인한 산불의 경우 꾸준한 계도 덕에 횟수가 1990년대 연평균 14건에서 2020년대 1건 미만으로 뚝 떨어졌다. 요행을 바라는 잘못된 인식을 없애기 위해 단속도 강화해야 한다. 인력이 부족하다면 폐쇄회로(CC)TV, 드론, 신고 포상제 등을 적극 고려해 볼 수 있다.
처벌 수위 역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현재 산림 및 그 인접 지역에서 불을 피우다 적발되면 1차 위반 시 30만 원, 2차 40만 원을 내고, 3차 이상 적발돼도 50만 원만 내면 된다. 산불을 내도 3년 이하 징역, 3000만 원 이하 벌금이 끝이다. 방화면 7년에서 15년 이하 징역형을 받지만 지난해 산불로 징역형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역대 세 번째 규모인 2022년 경북 울진·강원 삼척 산불은 차를 타고 가던 운전자가 버린 담배꽁초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결국 범인을 잡지 못했지만 부디 당사자는 자신이 버린 작은 불씨가 수많은 삶의 터전을 잿더미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길 바란다. 산불을 초래하는 모든 행위는 범죄다. 그저 작은 불씨란 없다. 부디 이번 산불로 얻은 교훈이 변화의 불씨가 되길 기원한다.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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