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적하지 않던 의대생들을 움직인 건 대학이 일제히 제적을 통보하면서부터다. 연세대, 전남대 등 의사 출신 총장들부터 유급·제적 카드를 꺼내 들고 “원칙 처리”를 선언했다. 이젠 더 이상 사정을 봐주려야 봐줄 수 없는 상황이라서다. 올해 신입생까지 휴학에 동참하면 내년에는 24·25·26학번을 한꺼번에 교육해야 한다. 의대생만 특혜를 준다는 학내 여론도 비등하다. 지난해 두 학기나 집단 휴학을 승인했고, F학점을 받아도 유급되지 않도록 학칙을 개정했다. 다른 과였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의대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지만, 실제 수업이 원활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의대 비상대책위원회가 유급·제적을 피하기 위해 일단 등록 후 휴학을 하고, 휴학이 반려되더라도 수업을 거부하자고 했다. 정부는 의대생 전원이 복귀하면 내년 의대 정원을 증원 이전(3058명)으로 동결하기로 했고, 반발이 극심했던 진료 면허제와 미용시술 개방은 철회했다. 그랬더니 실손보험 개혁을 포함한 필수 의료 정책 전부를 폐기해야 복귀한다고 한다. 수업 거부로 의대 교육이 파행되면 증원 철회도 없던 일이 되고 의정 갈등도 다시 ‘강 대 강’으로 치달을 우려가 크다.
▷그런데도 의료계를 대표한다는 대한의사협회가 28일 “의대생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면서도 “공식 입장은 없다”고 했다. “의대 학장과 대학 총장은 학생의 재난적 상황에 더해 혼란을 가중시키지 않기를 바란다”며 뜬금없는 훈수도 뒀다. 의협 주류를 구성하는 개원의는 의정 갈등 동안 환자가 늘고, 수가는 오르고, 전공의가 쏟아져 나와 인건비는 줄어드는 수혜를 누렸다. 그러면서 의사 면허조차 없는 의대생을 대정부 투쟁에 앞세우는 건 비겁하고 무책임하다. 박단 의협 부회장 겸 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팔 한 짝 내놓을 각오도 없이 뭘 하겠다고. 저쪽이 원하는 건 굴종 아닌가”라며 오싹한 선동을 했다.▷의대생이 돌아온다면 정부는 약속대로 의대 교육을 내실 있게 준비해야 한다. 24·25학번 순차 졸업 등 커리큘럼, 시설과 교수 확보에 차질이 있어선 안 된다. 이렇게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가야 의료계와 건설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의대생은 본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뿐이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굴종이라 생각할 필요도 없다. 고장 난 제도를 고치지 않고, 무모한 정책을 추진한 건 의대생 잘못이 아니다. 세상을 고민했던 시간을 바탕으로 좋은 의사가 되면 될 일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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