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짓말 허가증 내준 2심 판결
“앞으로 대한민국은 민주당이 ‘중도 보수’를 맡아야 한다” 같은 이재명의 매끄러운 발언에서 단초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 허언증(虛言症)처럼 태연하게 말을 뒤집는 고질적 태도 때문이다. 심지어 이번 공직선거법 항소심 재판부(재판장 최은정)는 정치인에게 거짓말 허가증까지 내준 셈이 됐다. 이재명이 “국토부 협박이 있었다”고 말한 데 대해 “상당한 압박감을 과장한 표현으로, 허위라고 보긴 어렵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으니 말이다.“이재명은 안 된다”고 부르짖는 이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나을지 모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속설처럼 이재명 발언에도 참말이 없지 않다는 사실이다. 듣는 이의 머리칼을 쭈뼛 솟게 만드는 마라 맛 말이지만 진심이란 그렇게 무심코 터져나오는 법이다.
● 이재명의 참말 “권력행사는 잔인하게”2016년 김어준의 유튜브에서 “저는 권력행사를 잔인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했던 고백이 대표적이다. 물론 “좋은 방향으로”라고 덧붙이긴 했다. 그러나 대선 패장이 빠르게 당권을 장악하고 ‘오너’로 올라선 과정을 돌이켜 보면, 참말이라 믿지 않을 수 없다.이재명 자신의 2023년 9월 체포동의안 국회 가결을 놓고 검찰-비명(비이재명)계의 ‘내통’과 이후 총선까지를 설명한 3월 유튜브 발언 역시 많은 걸 시사한다. 만에 하나, 그가 최고 권력자가 될 경우 어떤 나라를 만들어갈지 짐작 가능해 더욱 섬뜩하다.
● 홍위병 같은 문제인물 색출과 숙청
실제로 개딸(이른바 ‘개혁의 딸’) 등 강성 당원들은 ‘수박’ 색출에 돌입했다. 원외 강성 친명그룹이던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사무총장 강위원은 표결 전부터 “끝까지 추적 색출해서 당원들이 그들의 정치적 생명을 끊을 것”이라고 했다(작년 총선 ‘자객 공천’ 등을 통해 민주당 최대계파로, 신주류로 급부상한 의원들이 더혁신회의 소속이다).
비명계 의원들이 수백 수천통의 욕설문자를 받은 것은 물론이다. 표결 뒤 겁에 질린 의원들이 ‘부결 인증샷’을 올려야 했다. 민주당 홈페이지 국민응답센터엔 ‘공개적으로 가결을 표명한 해당행위 5인 이상민, 김종민, 이원욱, 설훈, 조응천에 대한 징계를 청원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와 수만 명 동의를 받기도 했다(결국 이들은 당을 떠났다). “내가 그들을 구체적으로 제거하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는 이재명의 말 그대로 남의 칼로 사람 잡은 차도살인(借刀殺人)이다.● 이재명의 참말 “정치보복은 몰래 하지”
어디 박광온 뿐이랴. 대선 경선과 당 대표 선거 때 이재명과 맞섰던 박용진은 총선 공천에서 ‘의원 평가 하위 10%’라는 ‘시스템’에 의해 비명횡사 당했다. 역시 이재명은 순결하고도 고고하게 아무 짓도 안했던 것이다. 당원과 국민, 그리고 시스템에 의해 일극체제가 형성됐을 뿐.
참으로 반지르르한 배암 같은 소리다. 이보다는 “세상에 어떤 대통령 후보가 정치 보복을 공언하느냐. 하고 싶어도 꼭 숨겨놓았다가 나중에 몰래 하지”(2022년 2월 27일)가 이재명의 참말이었다. 마오쩌둥은 애국주의로 무장한 분노청년들을 동원해 문제의 인물들을 처단하는 문화혁명(1964~1976)을 벌였다. 홍위병이 본때만 보이면 나머지 인민들은 알아서 자기검열을 하는 전체주의로 돌입한다. 그래서 모골이 송연한 것이다. 민주당 뿐 아니라 나라가 그리될 것 같아서.
● 개딸 동원한 일극체제, 전체주의 징조다
중국 공산당은 권력분립을 부정하고 입법부와 행정부가 통일된 의행합일(議行合一)을 강조한다. 거대 야당 ‘이재명의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그대로 의행합일이 된다. 특정인이 권력을 독점하고 정부 내 견제와 균형을 허물 때 무너지는 것이 민주주의다. 프랑스혁명의 가장 비극적 측면이 발발 10년 뒤 새로운 프랑스가 과거의 프랑스와 흡사하다는 사실이었다.
전적으로 무(無)도덕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선하지 않고도 누구 못지않게 위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폴레옹은 철저하게 현대적 인물이었다(제임스 웰스 ‘인간은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 이재명에게 선함이나 위대함까지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권력자들은 자신이 구사하는 용어와 수사법의 신봉자이자 포로가 될 수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그리하여 사법 리스크는 넘어섰으되 신뢰 리스크는 어찌 넘을지, 아니 안 넘어도 될지 지켜볼 일이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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