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세정장비 기업 엘에스이가 중복 상장 논란에 막혀 코스닥시장 상장을 철회하자 증권가에선 관련 논쟁이 뜨겁다. 기업공개(IPO) 복병으로 등장한 중복 상장 기준을 놓고 시장 혼선이 커지고 있다.
통상 중복 상장은 ‘쪼개기 상장’과 비슷한 것으로 여겨진다. 한 기업이 영위하던 사업을 자회사로 물적분할한 뒤 따로 상장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엘에스이는 중복 상장이 아니다. 엘에스이의 모태회사는 1994년 설립된 무진전자다. 코스닥 기업 엘티씨가 2022년 이 회사를 인수해 대주주가 됐다.
엘에스이는 모회사 소액주주 환원책도 내놨다. 공모주 20%를 엘티시의 일반 주주에게 현물 배당하기로 한 것이다. 중복 상장 논란에도 상장에 성공한 모범 사례로 꼽히는 필에너지(필옵틱스 자회사)가 제시한 환원책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한국거래소가 엘에스이의 상장을 승인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인 이유는 연결 기준 엘티씨의 실적에서 엘에스이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매우 크다는 것이라고 한다. 상장 예비심사 전만 해도 알려지지 않은 심사 기준이다.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시각도 많다. 엘티씨 소액주주의 반발이다. 소액주주들은 엘에스이에 투자할 기회가 일반 투자자에게 열리면 모회사 엘티씨 주식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에서 결집해 금융당국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상장이 좌절된 엘에스이는 공모자금 대부분을 공장 증설에 투입한다는 목표였다. 이제는 증설을 위해 차입 등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거래소가 명확한 기준 없이 소액주주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래소의 오락가락 행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예비심사를 신청한 기업마다 결과가 달라 해당 기업과 모회사들이 승복하지 못하고 있다.
모회사가 상장사여도 IPO에 성공한 기업은 셀 수 없이 많다. GC녹십자 그룹 계열사 GC지놈과 청담글로벌 자회사 바이오비쥬는 코스닥 입성에 성공했다. 뉴파워프라즈마 자회사 도우인시스도 상장했다. 어떤 차이가 상장 승인 여부를 좌우했는지 업계에선 아무도 모른다.
시장 불만이 고조되자 거래소는 중복 상장과 관련해 증권사 IPO 실무자들과 수차례 회의를 했다. 하지만 아직도 명확한 기준을 아는 사람은 없다. 결국 피해는 기업과 주주들이 본다. 이제라도 명쾌한 중복 상장 기준을 가지고 예측가능한 심사를 해야 한다. 지금처럼 소액주주 여론에 좌우되면 예측 가능성이 사라진다. IPO는 기업 미래에 직결된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기준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