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같은 이름, 다른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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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9.22 17:30 수정2025.09.22 17:30 지면A31

[천자칼럼] 같은 이름, 다른 회사

“몇 번 말해. 라면 만드는 그 회사 아니라고.”

삼양그룹이 지난 6월 내놓은 기업 광고에서 배우 박정민이 던진 대사다. 식품·화학·의약을 주력으로 하는 삼양그룹은 ‘불닭볶음면’의 삼양식품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비자의 혼동을 절묘하게 짚어내 유튜브 조회수가 1400만 회를 넘겼다. 같은 이름으로 오해받는 사례는 의외로 적지 않다. 삼천리(도시가스)와 삼천리자전거(자전거), 동원산업(참치)과 동원수산(수산물) 등이 그렇다. 삼성그룹이나 현대자동차그룹과 직접 관련이 없지만, 사명에 ‘삼성’이나 ‘현대’가 들어간 회사도 부지기수다. 삼성출판사, 삼성제약 등은 삼성그룹과 무관한 회사다.

최대주주가 바뀌어 계열이 분리된 뒤에도 기존 사명을 그대로 써 혼란을 키우는 사례도 있다. 브랜드 인지도를 살리려는 의도가 크지만, 때로는 피해를 보기도 한다. 2015년 하림그룹이 인수한 팬오션(옛 STX팬오션)은 1년 가까이 옛 이름을 쓰면서 STX그룹 부실 사태의 불똥을 맞았다. 벌크선 분야에서 세계 최상위권이던 기존 사명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STX 사태의 신용도·평판 리스크가 전이된 것이다.

LG건설 역시 2005년 LG그룹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1년 뒤에야 GS건설로 사명을 바꿨다. 아파트 브랜드 ‘자이’의 높은 선호도를 새 간판에 흡수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는 후문이다. OB맥주는 두산그룹이 2001년 매각한 이후에도 사명을 유지하고 있다. 충성고객의 이탈을 막기 위한 것이다.

최근 롯데카드의 대규모 해킹 사고로 롯데그룹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룹과 무관해진 카드사의 사고가 롯데그룹 전체 이미지 훼손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2019년 MBK파트너스에 롯데카드를 매각했지만, ‘롯데’ 브랜드 사용을 일정 기간 허용한 것이 화근이었다. 브랜드 경영에서 사명 유지 전략은 시장 혼란 방지, 고객 유지, 로열티 수익 창출 등의 장점이 있다. 하지만 사는 쪽이나 파는 쪽이나 평판 리스크가 있다는 점을 롯데카드 사례는 잘 보여준다. 특히 소비자 접점이 큰 업종일수록 브랜드 라이선싱에 각별히 신중할 필요가 있다.

서욱진 논설위원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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