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생산적 금융과 모험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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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생산적 금융과 모험자본

미국 방위산업 기업인 안두릴의 창업자 파머 러키가 지난 8월 방한해 국내 기업들과 협력을 논의했다. 2017년 설립된 안두릴은 인공지능(AI)을 무기체계에 접목해 드론, 무인 전투기 등을 개발하는 방위산업 테크 기업이다. 정보기술(IT) 업계에 방산과 철저히 거리를 두는 불문율이 있던 시절, 러키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미 팰런티어를 창업해 상장시킨 피터 틸이 대규모 자금을 지원했다. 비상장사인 안두릴의 기업가치는 300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안두릴은 방위산업 체제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기존 방위산업은 정부에서 주문받은 뒤 개발과 생산을 하는 구조로 독과점 체제를 유지한다. 하지만 안두릴은 일반 소비재처럼 먼저 개발·생산한 뒤 정부를 대상으로 마케팅하고 판매한다. 안두릴은 모험자본 시장이 고도로 발달한 미국이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을 선도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모험자본은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이에 따른 큰 손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자본이다. 초기 창업 자금뿐만 아니라 벤처와 혁신기업의 성장기·성숙기 등 생애주기에 맞춰 자금을 공급하고, 나아가 정체기를 맞은 기업의 신사업 확대와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자본까지 포괄할 수 있다. 모험자본은 기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효율적 자원 배분에도 역할을 한다.

이재명 정부 금융정책의 화두는 생산적 금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억원 신임 금융위원장도 취임사에서 첨단전략산업 지원을 위한 생산적 금융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경제성장률이 1%대에 머물고 잠재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경제 성장을 재점화하는 생산적 금융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모험자본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생산적 금융의 실행을 위해 향후 5년간 AI,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산업을 집중 지원하는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조성안을 지난 10일 발표했다. 산업은행이 운용하는 첨단전략기금에서 절반인 75조원을, 민간에서 나머지 75조원을 조달하기로 했다. 정부 재원으로 초저리 대출을 제공해 위험을 부담하고, 민간 기금은 정부 재정이 후순위를 보강해 투자 수익을 누리는 구조다. 이런 구조는 모험자본 본연의 특성과 부합하지 않고, 민간에서는 선뜻 나서지 않는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모험자본의 중요성은 충분히 강조됐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픈 현실이 국민성장펀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금융회사들이 굳이 모험자본에 투자할 필요가 없었던 것은 그동안 부동산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은행은 주택담보대출로, 증권사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큰 위험을 부담하지 않고도 높은 수익을 확보할 수 있었으니 굳이 투자금을 날릴 위험이 있는 모험자본 투자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금융위는 지난 4월 증권업 기업금융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해 자본금 4조원 이상 종합금융투자사업자는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기업금융에는 50% 이상, 부동산에는 30% 이하로 운용하게 했다. 종투사 전체 운용자산에서 발행어음 조달액의 25%에 상응하는 금액을 국내 모험자본에 공급하도록 했다. 증권사들의 자금 조달은 증가해 왔지만 모험자본 공급은 이에 못 미친다는 문제의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금융위는 은행의 모험자본 공급을 늘리기 위해 지난 19일 주택담보대출의 위험가중치 하한을 20%로 높이고 주식 가중치는 250%로 낮추기로 했다. 향후 벤처캐피털과 사모펀드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는 추가 방안 역시 기대해본다.

우리 경제의 혁신을 재점화하고 성장을 일으키고 좋은 일자리를 젊은 세대에 제공하기 위해서는 생산적 금융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그 핵심이 모험자본이다. 틸은 페이팔 창업 성공으로 종잣돈을 마련했고, 이후 페이스북 등에 대한 투자에 성공하며 억만장자가 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팰런티어를 창업하고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러키 같은 혁신 기업가의 창업과 기업 성장을 지원한다. 이는 모험자본의 선순환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국민성장펀드가 생산적 금융으로 성과를 거두고 국내 모험자본을 발전시키는 출발점이 돼 경제성장과 금융 발전의 선순환이 이뤄지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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