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법에도 없는 상생자금…서로 관할 아니라는 정부·지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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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법에도 없는 상생자금…서로 관할 아니라는 정부·지자체

“전통시장이 지역 표심의 바로미터인데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관내 22개 전통시장이 운영 중인 수원특례시의 한 고위 관계자는 6일 백화점·마트 신규 출점 시 상인회에 지급되는 ‘상생자금’을 놓고 이같이 토로했다. 상생자금이란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특정 지역에 대규모 점포를 개설하려는 유통기업이 인근 전통시장에 상생 협력을 명목으로 이뤄지는 현금성 지원이다. 기업과 전통시장 상인회는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협의체에서 ‘지역협력계획서’를 작성한다. 이 계획서에는 ‘상인 자녀 채용’ ‘전통시장 노후 시설 개·보수’ 등 현금 지원 명목이 빼곡히 담긴다.

유통산업발전법 소관 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다. 법에는 상생자금이 명시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유통기업은 신규 점포를 출점할 때마다 ‘알아서’ 현금을 내놓는다. 협의체 동의가 없으면 영업을 개시할 수 없어서다.

이런 식으로 각 전통시장 상인회 계좌에는 적지 않은 현금이 입금된다. 기업 입장에서도 오히려 일 처리가 쉽고 빠르다. 상인회가 이 돈을 야유회 비용으로 쓰거나 회원끼리 나눠 가져도 외부에선 알 길이 없다. 취재하며 만난 다수 상인은 이를 ‘피해보상금’으로 인식하기도 했다.

이처럼 불투명한 자금 처리 방식을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전혀 없다. 관계부처와 지자체가 서로 나서길 꺼려하는 탓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역마다 상황이 달라 중앙부처가 상생자금을 잘 활용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자금 유용에서 조직에 문제가 있었다면 횡령 등 다른 법령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통시장법 등을 관할하는 중소벤처기업부 역시 “전통시장의 인가 주체는 각 지자체이기 때문에 감독권도 지자체에 있다”며 “중기부가 개입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각 기관의 ‘나 몰라라 행정’ 때문에 상생자금은 전통시장 내부에서 ‘분열자금’이 됐다. 최근 열린 수원의 한 전통시장 상인회 회의장에선 고성과 욕설이 난무했다. 회의에 참석한 일부 상인은 “왜 상인회 임원이 자금 용처를 마음대로 정하느냐”며 따졌다. 몇몇 상인이 동석한 수원시 관계자를 향해 중재 요청을 하기도 했지만 “자금 활용은 상인회 내부 결정 사항”이라며 방관했다. 상생자금 자체가 법에 없는데 이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명시돼 있을 리 만무하다.

한 상인은 “행정 감시를 해달라고 민원을 내봤자 경기도→시→구청으로 뺑뺑이만 돌리다 끝난다”며 화를 냈다. 내부에서 일고 있는 자정 목소리조차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셈이다. 상생이라는 미명 아래 오히려 갈등이 고착화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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