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희망은 전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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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희망은 전략이 아니다

0.01초 차이가 승부를 가르는 포뮬러1(F1) 경기. 단 10개 팀, 20명의 드라이버만 참가하는 그랑프리 레이스는 단순한 속도 경쟁을 넘어 팀마다 매년 수천억원을 쏟아붓는 첨단기술의 각축장이다. 최고 정점의 공기역학 기술을 적용한 경주차 설계, 고성능 하이브리드 엔진이 결과를 좌우하지만 그것만으론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 예측 불가능한 날씨, 추돌 사고 등 수많은 변수 앞에서 레이스 향방을 결정짓는 건 결국 전략과 팀워크다.

지난 6월 개봉한 영화 ‘F1 더 무비’에서 주인공 드라이버는 경기 결과를 낙관하는 팀원들에게 “희망은 전략이 아니다(Hope is not a strategy)”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아무리 고성능 차량과 노련한 드라이버가 있다고 해도 낙관적 기대만으론 극한의 레이스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일깨우는 말이다.

미국과 관세협상, 끝 아닌 시작

이 영화 속 대사가 문득 떠오른 건 지난달 31일 한·미 관세협상 타결 소식을 접하고서다. 올해 4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해방의 날’을 선언하며 200여 개국을 겨냥해 일방적 상호관세 정책을 발표했다. “미국이 약탈당하고 있다”는 자극적 정치 구호를 앞세우며 내놓은 조치다. 설마 했던 우려는 현실이 됐고,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단순 압박용 카드일 것이란 기대는 무너졌다.

한국은 미국과 반세기 넘게 혈맹이란 이름 아래 군사·경제적 우호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우방이란 수식어에 기댈 수 없게 됐다. 이번 관세협상 과정에서 혈맹·우방이란 양국 간 관계 방정식은 협상 테이블에서 아무런 실효성을 갖추지 못했다. 트럼프 시대 미국은 자발적 동의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소프트파워 대신 압박과 철저한 거래 중심의 하드파워 전략을 펴고 있다.

트럼프식 뉴노멀 외교 맞서야

일단 상호관세율이 25%에서 15%로 낮아지며 급한 불은 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문제는 그 대가다. 13년간 유지되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제로 관세 혜택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협정문이 아닌 메모 형식의 비망록 합의로 향후 세부 조건을 둘러싼 해석을 놓고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도 크다. 농축산 시장 추가 개방과 2000억달러 규모 신산업 투자 펀드 운용권을 놓고 벌써부터 양국 입장이 엇갈린다. 이달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과 함께 진행될 추가 협상에선 주한미군 역할 조정 등 ‘동맹의 현대화’ 내용을 담은 안보 청구서가 추가로 제시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1주일 전 협상 타결이 끝이 아닌 시작인 이유다. 정부 협상단은 성과를 자찬하며 안도할 때가 아니다. 외교는 최상의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한 과정의 연속이며 결과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추가 협상 과정에선 플랜 B와 C, D까지 치밀한 시나리오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즉흥적 압박에 대비해야 한다. F1에서 드라이버와 팀이 서킷에 따라 전략을 유연하게 조정하듯 변화무쌍한 상황에 맞는 당당한 대처가 필요하다. 우리 기업, 우리 국민의 지갑에서 나온 혈세가 적어도 예측불허 정치인의 치적거리로 전락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 희망은 전략이 아니다. 전략은 오직 철저한 준비와 냉정한 대응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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