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1호선 외대앞역 1번 출구 앞. 출구를 등지고 돌아서자마자 아파트 공사현장이 보였다. 정말 출구에서 1분도 채 걸리지 않을 거리였다. 이문·휘경뉴타운 중 이문3구역이다. 올해 11월 ‘이문아이파크자이’라는 이름으로 입주자들을 맞을 이 아파트는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문3구역을 오른편에 두고 좁은 길을 걸어 한국외대 방향으로 올라갔다. 외대로 건너가는 횡단보도를 건너자 또다른 대단지 아파트가 나타났다. 이문1구역을 재개발한 ‘래미안 라그란데’였다. 입주 4개월 차를 맞았다.
서울 지도를 살펴보면 동대문구는 입지가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대한민국의 횡축(인천~강릉)을 담당하는 6번 국도가 광화문에서 종로를 거쳐 동대문, 청량리로 이어진다. 북부간선도로, 동부간선도로, 내부순환로 등도 인접해 있다. 청량리역에서는 수인분당선, 경의중앙선, 경춘선, KTX 강릉선 등을 바로 이용 가능하다. 이 같은 장점에도 동대문 일대는 그동안 낙후된 이미지가 강했다. 서울 부도심 역할을 하던 청량리는 강남권(GBD), 영등포·여의도 일대(YBD)에 기능을 내줬다. 하지만 청량리역을 중심으로 이문·휘경동 일대에서 대규모 정비사업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주거 환경이 크게 좋아지고 있다. 실거주 지역을 찾는 수요자들이나 투자자들의 관심도 함께 높아지는 모습이다.
이문·휘경재정비촉진지구(이하 뉴타운)는 1호선 외대앞역과 신이문역 사이에 위치한 동대문구 이문·휘경동 일대 노후 주택가 약 101만㎡를 재개발하는 사업이다. 청량리뉴타운, 전농·답십리뉴타운과 함께 동대문구 대표 재개발 사업지로 꼽히는데 앞의 두 곳보다는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2005년 3차 뉴타운 지구로 지정된 이후 이문동 4개 구역과 휘경동 3개 구역 사업이 추진됐지만 주민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번번이 사업이 지연됐기 때문이다. 결국 이문 2구역은 주민 반대에 밀려 2014년 구역 지정이 취소됐다. 지금은 이문1·3·4구역과 휘경1·2·3구역 6개 구역이 총 1만2000여 가구 규모 재개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지나 했던 이문·휘경뉴타운은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청량리역 역세권 개발이 가시화되고, 이문4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들이 입주를 했거나 입주를 앞두면서 재개발 사업이 결실 단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문·휘경뉴타운의 핵심은 외대앞역에서 가까운 이문3구역과 이문4구역이다. 지금은 사업 속도가 빠른 3구역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만 동부간선도로·북부간선도로로 접근하기 쉽고, 중랑천 조망도 일부 가능한 4구역 입지가 시간이 갈수록 빛을 낸다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이문3·4구역에는 다소 밀리지만 1구역 입지도 좋은 편이다. 한국외국어대와 맞닿아 있고 서쪽으로는 천장산, 북쪽으로는 의릉을 뒀다. 삼성물산이 시공을 맡은 이 단지는 이름을 ‘래미안 라그란데’로 확정했다. 모두 39개동, 3069가구 규모인 이 단지는 올 1월 입주가 시작됐는데 서울 강북권에서 처음으로 3000가구가 넘는 래미안 단지가 됐다.
이문로를 사이에 두고 이문1구역과 마주 보는 이문3구역은 사업지 규모가 15만7942㎡로 이문·휘경뉴타운 가운데 가장 크다. 1호선 외대앞역 역세권이고, 구역 북쪽에선 신이문역도 걸어서 5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이문3구역도 올해 11월 입주한다. 시공은 GS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이 맡았는데, 이름을 ‘이문아이파크자이’로 지었다.
이문3구역은 특이하게도 이문3-1구역과 이문3-2구역으로 나눠 개발된다. 외대앞역서 가까운 단지가 3-1구역, 이문1구역을 지나 천장산 기슭에 있는 단지가 3-2구역이다. 두 구역이 서로 붙어 있지도 않은데 3-1구역에서는 역세권 고층 개발을 하고, 3-2구역에서는 구릉지 저층 개발을 동시에 진행하는 ‘결합건축 방식’을 통해 3-1구역이 높은 용적률을 적용받을 수 있었다. ‘이문아이파크자이’ 1단지와 2단지로 재개발되는 3-1구역에 지하 6층~지상 41층 18개동 4169가구가, ‘이문아이파크자이’ 3단지로 탈바꿈하는 3-2구역에 지하 1층~지상 4층 7개동 152가구가 각각 들어선다.
개발 업계에선 이문3구역 사례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도심 재생은 고도 제한 등 여러 규제로 개발 사업성이 우수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용적률 거래제’를 통해 이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용적률 거래제는 우리나라에도 2016년 ‘결합건축’이란 이름으로 도입됐는데 제약 조건이 많아 활용된 적이 거의 없었다.
이문3구역 다음으로 규모가 큰 이문4구역(15만1388㎡)은 다른 이문·휘경뉴타운 구역과 달리 완전 평지로만 이뤄져 있다. 이처럼 장점이 많은데도 한때 일부 조합원이 동대문구를 상대로 조합설립인가 취소 소송을 제기해 사업이 공회전했다. 그러다가 2019년 4월 동대문구 승소로 소송이 마무리되면서 사업에 속도가 붙었다. 최근 통합건축심의를 진행 중이고 새 아파트 3628가구를 지을 계획이다. 시공사는 롯데건설·현대건설 컨소시엄이 맡는다.
경희대에 좀 더 가까운 휘경뉴타운에선 휘경1구역(휘경해모로프레스티지)과 휘경2구역(휘경SK뷰)이 입주를 마쳤다. 회기역과 외대앞역 이용이 모두 편리한 휘경3구역은 ‘휘경자이 디센시아’라는 이름으로 올해 6월 입주한다. 이곳에 GS건설이 총 1806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조성한다.
최근 이문·휘경동 일대 아파트 시세는 전용84㎡ 기준으로 대부분 12억~13억원대다. 근처 전농·답십리뉴타운을 재개발한 래미안크레시티·래미안미드카운티에 살짝 미치지 못한다. 입주가 비슷한 시기에 몰리면서 가격이 약간 눌려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문·휘경뉴타운 재개발 사업이 마무리되면 가격 평가가 다소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동대문 일대는 주거 환경 개선 사업 외에도 여러 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이문차량기지’ 일대 개발 사업이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보유한 이문차량기지는 이문동과 성북구 석관동에 걸쳐 있는 약 20만㎡의 대규모 차량기지다. 그동안 기지 내 전동차에서 발생하는 소음 등으로 주민 민원이 꾸준히 제기됐다.
동대문구의 전통적 핵심 입지인 청량리역 일대도 천지개벽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재작년부터 청량리역 일대에서는 고층 주상복합단지가 순차적으로 입주를 마쳤다.
40층 높이 ‘청량리역 해링턴 플레이스’를 시작으로 ‘청량리역 한양수자인 그라시엘’ ‘청량리역 롯데캐슬 SKY-L65’, ‘힐스테이트 청량리 더퍼스트’가 모두 입주했다. 모든 단지가 40층 이상 고층 건물인 만큼 일대 스카이라인이 대폭 바뀌었다.
청량리역의 교통 편의성도 대폭 개선된다. 청량리역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B노선과 C노선이 모두 지날 예정이다. 여기에 복합환승센터 구축도 앞두고 있다. GTX-B노선은 인천대입구에서 여의도, 용산 등을 거쳐 남양주시 마석역까지 이어진다. GTX-C노선은 경기도 양주시 덕정역에서 강남 삼성역, 양재역 등을 지나 수원역, 상록수역까지 개통될 예정이다. 청량리역에서 서울 핵심 업무권역인 강남, 여의도 일대로 가는 교통 편의성이 대폭 개선되는 만큼 서울 강북 일대에서 최대 규모인 역세권 단지가 탄생할 예정이다. 여기에 강북횡단선, 면목선까지 개통이 이뤄지면 기존 노선인 1호선, 수인분당선, 경춘선, 경의중앙선, KTX 강릉선 등이 연계되는 서울의 핵심 광역교통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랩장은 “동대문 일대는 광역교통망 확충과 함께 초고층 단지들이 들어서고, 근처 이문·휘경뉴타운까지 재개발 작업이 마무리되며 부동산 가치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과 광운대 역세권 사업도 이문·휘경뉴타운에는 호재다. 서울시는 작년10월 동부간선 지하도로 착공식을 가졌다.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은 월계동에서 대치동 구간에 대심도 지하도로(터널)를 설치하고 기존 동부간선도로 구간을 지하화하는 사업이다. 1단계(월릉~대치 12.5㎞)로 교통개선을 위한 대심도 지하도로를 2029년까지 건설하고, 2단계로 기존 도로 구간(월계~송정 11.5㎞)을 2034년까지 지하화한다는 계획이다. 사업이 마무리되면 이문·휘경뉴타운에선 이문4구역이 가장 수혜지로 꼽힌다.
광운대 역세권 개발 사업 역시 지난해 착공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GTX-C 노선이 지나는 광운대역 인근 14만8166㎡ 용지에 최고 49층 높이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주거시설과 호텔, 오피스, 쇼핑몰 등 복합시설을 조성하기로 했다. 2028년 준공을 목표로 지난해 11월 분양도 진행했다. 준공 이후 HDC현대산업개발은 본사를 이 곳으로 이전할 계획까지 잡고 있다.
이문·휘경뉴타운에는 많은 개발호재가 몰려있지만 도로 용량과 우회도로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문·휘경뉴타운을 관통하는 이문로는 편도 2차로(왕복 4차로)에 불과하다. 회기역까지 이어지던 편도 3차로(왕복 6차로)가 좁아져 상습적으로 병목현상이 발생한다. 이마저도 곳곳에 비보호 좌회전 구간이 있어서 직진 차로로 이용할 수 있는 구간이 제한적이다.
우회도로도 마땅치 않다. 그나마 한국외국어대 앞에서 동부간선도로 방향으로 우회할 수 있는 휘경로도 사정은 비슷하다. 신호가 짧은 데다 도로가 더욱 좁아지기 때문이다. 이문동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차가 네다섯 대만 지나가도 신호가 끊겨 정체가 풀리지 않는다”며 “이문아이파크자이 지하를 지나는 도로를 공사 중이지만 이문4구역 사업이 끝나야 완전 개통하기 때문에 당분간 교통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대 주민들은 도로 폭을 확장하는 게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라고 토로한다. 하지만 이 경우 길가에 있는 건물의 보상 문제가 발생한다. 이문동 일대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도로변 건물들을 재개발 구역으로 묶지 못하고 남겨둘 때부터 건드리기 어려운 문제로 남았다”고 말했다. 동대문구 관계자는 “이문로 도로 체계 개선과 관련한 용역을 진행중”이라며 “도로 확장과 노선 계획 등 모든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