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구로구 고척동에서 분양한 ‘고척 푸르지오 힐스테이트’에서 82점짜리 청약통장이 등장했다. 만점(84점)에서 단 2점 모자라는 고가점자가 서울의 외곽 지역 아파트에 청약한 것이다. 서울 분양에 쏠리는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동시에 ‘청약 가점 인플레이션’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7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가입 기간이 15년 이상인 청약통장은 총 379만3712계좌였다. 청약예·부금과 청약저축, 주택청약종합저축을 모두 합한 수치다. 작년 4월(135만871계좌)보다 244만 계좌가량 증가했다.
청약가점은 무주택기간(32점)과 부양가족 수(35점), 청약통장 가입 기간(17점) 등의 항목으로 구성된다. 청약통장 가입 기간이 15년 이상이면 해당 항목에서 만점(17점)을 받을 수 있다. 오랜 기간 청약통장을 묵혀둔 수요자는 통상 무주택 기간도 길다. 청약시장에서 매우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는 고가점자 대상군이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민간과 공공 등 모든 유형의 아파트에 적용할 수 있는 주택청약종합저축은 2009년 5월 첫선을 보였다. 이 상품이 출시된 지 15년이 지나면서 고가점자가 본격 쏟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첨 경쟁’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과거만 해도 80점대 통장은 서울 강남권 등 일부 지역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1년 새 만점 통장이 나온 단지만 전북 전주 ‘더샵 라비온드’, 경기 의왕 ‘의왕 월암지구 대방 디에트르 레이크파크’, 서울 강동구 ‘비오르’, 강남구 ‘디에이치 대치 에델루이’, 서초구 ‘래미안 원펜타스’, 경기 성남 ‘산성역 헤리스톤’ 등 9곳에 달한다.
청약 가점 인플레이션으로 청년층 사이에선 ‘청약 무용론’도 일고 있다. 가입 기간이 2년 미만인 주택청약종합저축 계좌는 작년 4월 494만7879개에서 올해 4월 461만6687개로 33만 개 넘게 줄었다. 가입한 지 2년이 채 안 돼 청약통장을 깨는 수요자가 그만큼 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10년 넘게 청약통장을 차곡차곡 납입한 40~60대 사이에서 역차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혼부부 등 젊은 세대의 내 집 마련을 돕는다는 취지에서 최근 몇 년간 특별공급과 추첨제 비율을 점점 높이는 정책을 펼쳐 가점제로 당첨자를 뽑는 파이 자체가 작아지고 있어서다.
이인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