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산업재해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산재에 대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아니냐”고 하는 등 강경한 발언도 쏟아냈다. 하지만 정부가 재해 사업장에 영업정지 등 강도 높은 제재를 검토하는 와중에도 코레일 선로 사고로 7명이 죽거나 다치는 등 대형 사고가 잇따랐다. 시행 3년을 넘긴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서도 사고를 줄이는 효과가 거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산재 발생 사업장과 경영 책임자에 대한 처벌 및 제재 수위를 높여도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전 예방보다 사후 면피가 합리적
인간은 미래에 예상되는 편익과 비용을 계산해 행동한다. 이를 기대효용이론이라고 한다. 사업주나 경영자라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기업과 경영자 입장에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활동은 당장의 확실한 비용이다. 안전 장치를 마련하고 자동화 장비를 도입하려면 돈을 써야 하고, 근로자들이 안전 규정을 원칙대로 지키게 하려면 어느 정도 생산성 하락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 사고가 발생했을 때 받게 될 처벌과 불이익은 미래의 불확실한 비용이다. 만약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높지 않다면 안전을 위한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다.
더구나 인간은 자기에게 유리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게 평가하고 불리한 일이 생길 가능성은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낙관 편향’이라고 한다. 처벌 수위를 높여도 기업 경영자는 ‘우리 회사에선 사고가 안 일어나겠지’ 하는 낙관 편향에 빠지기 쉽다. 그 결과 사고 예방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있다.
또 기업과 정부 사이에는 정보 비대칭이 존재한다. 정부는 기업 경영자가 산업 현장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실질적 조치를 했는지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다. 현장을 모르는 정부가 권한은 강력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실질적 조치보다 서류를 꾸미는 데 치중한다. 그래야 나중에 혹시 문제가 생기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대재해법 시행 후 기업 현장에서는 서류 작업을 하느라 현장 안전 관리에 더 소홀해졌다는 푸념이 나온다.
◇근로자 협조에 달린 중대재해법 효과
인간이 편익과 비용을 계산해 행동하는 존재라면 경영자가 산재로 치러야 하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높이면 어떨까. 그런 취지에서 입안되고 시행된 법이 중대재해법이다. 그러나 게임이론에 따르면 경영자 책임을 강화한 중대재해법은 오히려 사고 발생 위험을 높일 수도 있다.
박재옥·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 1월 발표한 ‘중대재해처벌법은 재해를 감소할 수 있는가’ 논문에서 게임이론을 바탕으로 중대재해법 효과를 분석했다. 논문 저자들은 중대재해법이 사고 예방을 위한 사업주의 주의 수준은 높이지만 근로자의 주의 수준은 낮춘다고 봤다. 사고 발생 시 근로자의 책임을 묻지 않을뿐더러 근로자는 거액의 손해배상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진이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 수칙을 마련하고 근로자 교육을 강화해도 현장에서 잘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결국 중대재해법이 사고를 줄인다는 보장은 없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고가 오히려 증가할 위험도 있다는 것이 논문의 결론이다. 논문은 중대재해법이 효과를 내려면 사업주의 근로자에 대한 통제력이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업주가 마련한 안전 관리 규정을 근로자들이 준수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산재 근절 vs 집값 안정
정부는 올해를 산업재해 근절 원년으로 삼겠다고 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산재 제로가 과연 적절한 목표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건설 현장에서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 사고 예방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보자. 공사 진행이 느려지고 작업이 멈추기 일쑤일 것이다. 그 때문에 아파트 건축비가 오르고 집값이 뛰어도 산재 근절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재해가 한 건만 발생해도 면허를 취소하고, 경영자를 중형에 처한다면 산재가 눈에 띄게 감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자리 또한 줄어들 것이다.
형법학자들은 엄벌주의가 범죄를 줄일 수 있는지에 회의적이다. 그렇다면 산재 예방 또한 처벌과 제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예방 활동을 할 때 주는 인센티브를 늘리는 방향으로 법·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