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은 성취, 재능, 재력, 지위 등에서 타인의 인정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으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필연적으로 불안을 동반한다. 성공이나 타인의 인정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삶은 일종의 시험장이 되기 때문이다. 평생을 수험생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은 성공하건 실패하건 결국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한 사람들이 집착하는 성취욕구와 인정욕구는 전형적인 결핍욕구에 해당한다. 결핍욕구는 목마른 사람이 바닷물을 마실 때처럼 일시적으로는 만족감을 줄지라도 이내 더 큰 갈망을 야기한다.
사실 존재 가치는 타인의 평가로는 증명될 수 없다.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은 평가할 수 있지만 사람 전체는 평가할 수 없다. 계속 변화하는 존재인 인간에게 최종 평가를 내리는 것은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재능, 재력, 지위 등 그 어떤 것도 인간 전체를 대표하는 기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나는 가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아니라, ‘나는 가치 없는 존재’라는 생각과 싸우고 있는 셈이다.
자신의 무가치함 문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치와 성과를 분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치 있는 사람임을 입증받고자 하는 것’과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심리적 성숙을 위해서는 삶의 중심을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것’에서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옮겨야 한다.인간은 자신의 무가치함 문제를 혼자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그러한 문제는 오직 안정적이고 지속적이며 긍정적인 관계 속에서만 해결 가능하다. 부모로부터 따뜻하고 친밀한 관계를 선물받았건, 선물받지 못했건 성인기 이후의 심리적 과제는 동일하다. 그 누구도 부모와 평생을 함께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성인기부터는 자신의 무가치함 문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평생지기(平生知己)’를 만나야 한다. 반드시 그리고 필사적으로! 실수를 하더라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경험, 약점을 드러내도 존중받는 경험, 성취가 없어도 함께 있어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무가치함 문제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관계를 ‘이만하면 괜찮은(good enough) 관계’라고 부른다.
별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빛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기 안의 빛을 세상에 드러낼 뿐이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삶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타인에게서 증명받기 위한 무대가 아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받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들을 삶 속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루하루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받고자 하는 시도를 멈출 때 비로소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평생지기를 만나는 것이다.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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