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가가는 고통과 어둠을 환희의 예술로 승화한 독보적인 뮤지션이다. 데뷔 이후 17년 동안 그는 명성을 얻었고(Fame·2008), 괴물로 변신했으며(Fame Monster·2009), 자신이 옳은 길을 가고 있음을 용기 내어 노래했다(Born This Way·2011). 끊임없이 자신을 재창조해 예술적 경지에 올려놓았고(Artpop·2013), 레이디 가가의 본모습으로 돌아가(Joanne·2016) 혼란과 분열로 가득한 세상에 화해와 평화의 색을 입혔다(Chromatica·2020). 화려한 모습 뒤에 그는 어릴 때 겪은 성폭행의 상처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그리고 우울증으로 짙게 물들어 있었다.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의 심한 섬유근육통도 앓았다. 레이디 가가의 본명은 스테퍼니 조앤 앤젤리나 제르마노타.
“깨진 거울 조각을 다시 맞추는 과정 같아요. 완전히 돌아갈 수 없으나 새롭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어요. 결국 모든 혼란은 기쁨의 힘을 가르쳐주고, 울고 웃으며 음악을 즐기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생각합니다.”(레이디 가가의 인터뷰 中)
레이디 가가는 고통과 환희 양극단을 오가며 치열하게 살아남은 아티스트다. 팬들은 그를 ‘마더 몬스터’로 부르고, 자신들을 ‘베이비 몬스터’라고 칭한다. 레이디 가가의 음악적 세계관은 분열, 혼돈, 충돌의 삼각지대에서 아름답게 피어난 예술 작품이다. 새 앨범 ‘메이헴(MAYHEM·2025)’도 그 연장선상이다.
대혼란을 의미하는 이 앨범에서 레이디 가가는 두 자아(가가와 조앤)가 양립하는 방법론을 통해 일기 같은 노래들을 담았다. 발매 첫날 스포티파이 재생 4530만 회라는 화려한 오프닝 스코어와 함께 빌보드 앨범차트 1위 기록을 세웠다. 이제 마더 몬스터가 무대에 오를 시간이다.
지난 4월 미국 캘리포니아 코첼라에서 화려한 귀환을 알린 레이디 가가는 이달 3일 브라질 리우에서 2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라이브 퍼포먼스의 정점을 보여줬다. 18일 월드투어 ‘더 메이헴 볼 투어’의 시발점을 알리는 공연이 싱가포르 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레이디 가가는 4일간(18·19·21·24일) 약 2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24일 찾은 싱가포르 내셔널 스타디움은 화려하게 치장한 베이비 몬스터로 가득했다. 아시아 각지에서 몰린 관객이 만든 풍경은 마치 표현주의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놀이터를 연상케 했다.
혼돈의 예술에서 영원의 아리아로
오직 레이디 가가의 무대였다. 게스트나 별도의 인트로 공연 없이 크게 4악장으로 이뤄졌다. 악몽의 여정을 떠나 깨어나기까지의 분열과 혼돈의 무대가 공연장 전체를 흔들어놓고, 마지막 파트에서 ‘배드 로맨스’로 마침표를 찍었다.
‘1악장: 오브 벨벳 앤드 바이스’는 암흑에서 탄생한 마더 몬스터의 이야기였다. 오후 8시33분, 무대 양옆에 설치된 LED(발광다이오드) 화면에서 마더 몬스터인 레이디 가가와 그의 원형인 조앤이 등장했다. 암흑을 가르는 붉은 조명이 짙게 깔리고, 레드 벨벳으로 치장한 거대한 드레스 중앙에서 우뚝 솟으며 모습을 드러낸 레이디 가가. 마더 몬스터의 성스러운 귀환을 알린 첫 곡 ‘블러디 메리’가 끝나고 강력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관현악이 합쳐져 ‘아브라카다브라’로 이어졌다. 드레스의 장막이 걷히고, 새장에 갇힌 혼돈의 자아들을 헤치고 레이디 가가가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초기 시절로 회귀해 관객들을 카리스마로 압도한 그는 ‘포커페이스’로 하이라이트 장면을 연출했다. 레이디 가가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알렉산더 매퀸(1969~2010)의 2005년 봄·여름(SS) 컬렉션 패션쇼를 재해석해 체스판 위에서 가가의 페르소나들이 대결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팝의 르네상스를 목도하다
‘2악장: 그리고 그녀는 고딕 드림 속으로’ 무대는 모래판으로 변했다. 해골 마스크를 쓴 안무가들과 모래판 위에 비스듬히 누워 죽음을 춤추는 모습은 ‘그로테스크적 표현예술’에서 레이디 가가가 일인자임을 증명한 무대였다. 증오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자신은 더 완벽한 스타가 돼 간다는 노래 ‘퍼펙트 셀러브리티’와 고통과 상처, 치유에 관한 노래 ‘디지즈’는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완벽한 라이브 퍼포먼스였다. 3악장은 혼돈의 세례식을 연상케 했다. ‘킬라’로 시작한 무대는 성전으로 변했고, 레이디 가가는 곡마다 블루 톤 의상으로 멋을 살렸다. 요절한 캐나다 아티스트 릭 제네스트에게 바치는 헌사 같은 곡 ‘좀비 보이’, 브루노 마스와의 듀엣으로 인기를 끈 트랙 ‘다이 위드 어 스마일’ 등이 이어졌다. 마지막 악장에서 레이디 가가는 ‘본 디스 웨이’ 앨범 탄생 14주년을 자축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환희의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곳곳에 보였다. 그가 출연한 영화 ‘스타 이즈 본’의 주요 곡을 부를 땐 모든 스태프를 무대로 불러 함께 노래했고, 마지막 곡인 ‘배드 로맨스’는 영원의 아리아로 남았다.
이번 월드투어는 레이디 가가가 연 팝의 르네상스를 목도한 순간이었다. 수학 공식처럼 정교하고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운 장면들이 완벽한 라이브와 퍼포먼스를 만나 전설이 되는 순간이었다. 핍박받고 고통받는 영혼을 위해 그가 부른 노래들은 레이디 가가와 조앤이라는 그의 두 자아가 창조한 새로운 세계관의 완성이었다.
싱가포르=이진섭 칼럼니스트·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