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 대응하려 한때 가축 수 줄이기
식량안보 관점 등 커지자 ‘핵심 인프라’
동부 국경지역 농지 비어…“새 안보위험”
환경단체 발발…“축산업 책임 축소 시도”
한때 온실가스 감축의 상징으로 지목됐던 소가 유럽에서 ‘안보 자산’으로 다시 평가받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이유로 가축 수를 줄이려 했던 유럽연합(EU)이 식량안보와 지정학적 위기가 커지자 축산업을 지켜야 할 전략 산업으로 방향을 180도 틀었다고 폴리티코 유럽판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새로운 축산 전략을 발표하고 소·돼지·닭 등 가축을 ‘핵심 인프라(Critical Infrastructure)’로 규정했다. 그동안 축산업을 온실가스 감축 대상으로 바라봤다면 이제는 식량안보와 경제 경쟁력, 전략적 자율성을 떠받치는 핵심 산업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집행위는 특히 축산업이 단순히 고기와 우유를 생산하는 산업을 넘어 유럽의 안보와도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동부 국경 지역에서 방목이 이어져야 농촌 공동화를 막고 국경 지역을 유지할 수 있으며, 안정적인 축산업이 식량 공급망과 전략적 자율성을 뒷받침한다는 논리다.
라파엘레 피토 집행위 부위원장은 “축산은 농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력과 식량안보, 유럽의 미래에 관한 문제”라고 말했다.
크리스토프 한센 농업 담당 집행위원도 “축산업은 현재 약 700만개의 일자리를 유지하고 연간 4000억유로(약 69조원)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산업”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유럽 전역에서 가축 수가 줄고 있고, 특히 동부 국경 지역의 농지가 비어가는 현상이 새로운 안보 위험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정책은 불과 몇 년 전 EU의 기조와는 정반대다. 2020년대 초반만 해도 유럽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가축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네덜란드는 질소오염 문제를 이유로 축산농가를 매입하는 정책을 추진했고, 아일랜드에서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젖소 20만 마리를 도태시키는 방안까지 검토됐다.
하지만 환경 규제가 강화될수록 농민들의 반발도 거세졌다. 질소 규제와 메탄 감축, 농약 사용 제한이 이어지자 유럽 곳곳에서 트랙터 시위가 벌어졌고, 결국 EU는 농업 분야 그린딜 정책 상당 부분을 사실상 후퇴시켰다.
새 전략에서도 이런 변화가 그대로 드러난다. 집행위는 더 이상 가축 수를 줄이는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사료 첨가제나 저배출 품종 개발 등 기술 혁신을 통해 메탄 배출을 줄인 농가에 보상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책 방향을 바꿨다.
특히 소에서 나오는 메탄은 화석연료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와 달리 자연 탄소순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물기원 메탄’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일률적인 감축보다 농장별 배출량을 정밀하게 측정해 효율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계획이다.
환경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그린피스를 비롯한 30여개 단체는 메탄은 발생 원인과 관계없이 지구온난화를 유발한다며 축산업의 책임을 축소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EU 기후 자문기구 역시 기술만으로는 목표 달성이 어렵다며 가축 수 감축과 식물성 식단 확대 등을 권고했지만, 이번 전략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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