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무섭다.’
4월 26일 ‘K리그의 자존심’ 광주 FC를 대파하는 알 힐랄(사우디아라비아)을 보며 든 생각이다.
불과 몇 년 전 유럽 빅리그 빅클럽에서 봤던 선수들이 알 힐랄 유니폼을 입고 광주를 상대했다. 그 생각이 더욱 짙어졌다.
알 힐랄은 압도적이었다.
브라질, 포르투갈, 세르비아 등의 국가대표 출신들답게 퍼스트 터치부터 달랐다. 퍼스트 터치가 안정적이고 빠르다 보니 공격으로 나아가는 속도도 대단히 빨랐다. 유럽 빅리그 출신들답게 실수도 매우 적었다. 그들이 중심을 잡아주니 사우디 자국 선수들의 경기력도 눈에 띄게 올라왔다.
K리그 관계자들이 중국 슈퍼리그가 막대한 투자를 감행하던 시기를 떠올리며 해줬던 공통된 얘기가 있다.
“골 결정력은 돈으로 사는 겁니다.”
알 힐랄은 그 수준을 넘어섰다. 골키퍼,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 모든 포지션을 유럽 빅리그에서 검증된 선수로 채웠다. 막대한 투자로 ‘유럽 빅클럽을 인수했다’고 해도 믿을만한 수준이었다.
알 힐랄은 애초 돈 걱정 없는 아시아 최고 명문이다.
알 힐랄은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에서만 19차례 우승(최다)을 기록 중이다. 알 힐랄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에서도 최다우승(4회)을 기록하고 있다.
2023-24시즌엔 리그 34경기 무패우승(31승 3무)을 달성했다. 알 힐랄은 세계 축구 역사상 가장 큰 금액을 쏟아붓고도 팀 전력에 도움을 주지 못한 네이마르가 빠지니 그 능력을 대체할 만한 유럽 빅리그 출신들을 영입해 성과를 냈다.
알 힐랄은 2024-25시즌 ACLE 리그 스테이지 서아시아 지역 8경기에선 7승 1무(승점 22점)를 기록하며 16강에 올랐다. 16강전 1차전 파흐타코르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 원정에서 0-1로 충격패를 당하긴 했지만, 16강 2차전 홈경기에서 4-0으로 대승하며 8강에 올랐다. 홈에서 펼쳐진 경기나 다름없었던 8강 단판에선 ‘돌풍의 팀’ 광주를 7-0으로 대파했다.
알 힐랄은 올 시즌 ACLE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다.
알 힐랄은 올여름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에도 출전한다.
알 힐랄은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 파추카(멕시코)와 한 조에 속해있다.
알 힐랄은 32개 팀 출전 개편 전인 2022년 모로코에서 열린 클럽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알 힐랄은 당시 위다드(모로코), 플라멩구(브라질)를 차례로 따돌리고 결승에 올라 레알을 상대했다. 알 힐랄은 이 대회 결승전에서 ‘유럽 챔피언’ 레알에 3-5로 졌다.
알 힐랄은 그때보다 훨씬 강해졌다.
알 힐랄은 2023년 7월 1일 SSC 나폴리, 첼시 등에서 활약했던 세네갈 국가대표 수비 핵심 칼리두 쿨리발리 영입을 시작으로 유럽 빅리그 출신을 대거 품었다.
알 힐랄은 FC 포르투, 울버햄프턴 원더러스에 몸담았던 포르투갈 국가대표 미드필더 후벵 네베스, 이탈리아 세리에 A 최고의 미드필더였던 세르게이 밀린코비치 사비치, FC 바르셀로나 출신 말콤, 2022 카타르 월드컵 최고의 골키퍼 야신 부누, 2022-23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4경기에서 14골을 터뜨렸던 스트라이커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 등을 영입했다.
화룡점정(畫龍點睛)은 네이마르였지만, 애초 네이마르 없이도 막강한 전력을 구축했다.
알 힐랄은 올 시즌 리그 29경기에서 19승 5무 5패(승점 62점)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시즌만큼 압도적이진 않지만, 리그 1위 알 이티하드를 승점 6점 차 추격 중이다. 알 힐랄은 올 시즌 리그 5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ACLE에선 팀 통산 5번째 우승을 향한 거침 없는 질주를 이어간다.
알 힐랄은 아시아 정상에 만족하지 않는다.
알 힐랄은 올여름 클럽 월드컵에서 프로페셔널 리그의 경쟁력을 내보이고자 한다. ‘자국 리그를 세계 축구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프로페셔널 리그의 야망을 이루고자 나아가는 것이다.
알 힐랄은 이번 클럽 월드컵을 통해 더 많은 ‘월드 스타’를 프로페셔널 리그로 끌어들이고자 한다.
현재 프로페셔널 리그에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사디오 마네, 은골로 캉테, 카림 벤제마 등 슈퍼스타가 활약 중이다. 알 힐랄만 슈퍼스타 영입에 열을 올리는 게 아니다. 리그 전체가 ‘세계 중심’이 되고자 막대한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
사우디의 범국가적인 투자를 ‘인권 유린과 같은 부정적 평판을 세탁하려고 한다’는 비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이른바 ‘스포츠 워싱’이다.
하지만, 비판의 소리가 당장 사우디의 막대한 투자를 막아서진 못한다. 사우디는 비판의 소리를 뭉개버릴 만큼 엄청난 자본을 쏟아붓고 있다. 사우디는 큰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고자 세계 정상급 선수 수집을 이어갈 것이다.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슈퍼스타’ 영입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사우디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출전 시간 제한으로 큰 고민을 안고 있다. 광주전에 선발로 나선 사우디 선수는 11명 중 2명에 불과했다.
사우디 대표팀은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조별리그를 통과한 뒤 단 한 번도 16강 이상의 성적을 낸 적이 없다.
일본 J리그와 중국 슈퍼리그는 ‘슈퍼스타 영입이 자국 리그와 자국 선수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만, 프로페셔널 리그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서 막대한 투자를 이어간다. 자국 리그의 성장에 초점을 맞춰 투자를 감행했던 일본, 중국의 사례와 목적이 다르다.
K리그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갈 것인가.
광주는 올 시즌 K리그에서 유일하게 ACLE 리그 스테이지를 통과해 토너먼트에 오른 팀이었다. 한국이 ‘라이벌’이라고 칭하는 일본에선 ACLE에 참가한 세 팀 모두 토너먼트에 올랐다.
광주 이정효 감독은 알 힐랄전을 앞두고 광주가 ACLE에서 우승해야 하는 이유로 큰 상금을 꼽았다. 그 상금으로 ‘클럽하우스를 지어주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K리그를 대표해 ACLE에 나선 팀이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조차 조성되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광주만 그럴까. K리그는 ‘겨울엔 추워서, 여름엔 더워서’ 프로축구의 기본인 잔디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잔디’가 매해 프로축구의 최대 이슈다. K리그엔 여전히 마땅한 훈련장이 없어서 속앓이하는 구단도 여럿이다.
K리그는 32개 팀이 참가하는 2025 클럽 월드컵에 출전 팀을 배출했다. 울산 HD다.
K리그는 4년 뒤 대회에선 참가 팀을 배출할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한다. 현장에서 나오는 큰 우려다.
어떤 계획으로 이 고민을 해결해 나갈 것인가. 2024-25시즌 ACLE 도전을 마친 K리그에 다시 한 번 던져진 과제다.
[이근승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