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가로등 불빛처럼 반짝이는 무대. '프랑스 뮤지컬'이라고 하면 왠지 무대 역시 화려한 장식과 볼거리로 가득할 것만 같다.
하지만 프랑스 대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무대는 오히려 투박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상징하는 거대한 벽과 기둥이 사실상 전부라서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파리로 순간 이동한 듯 순식간에 몰입하고 낯선 언어로 노래하는 배우들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다른 공연에선 쉽게 들을 수 없는 "브라보"라는 탄성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내한 20주년 공연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고 있다. 2005년 국내 초연 이래 누적 167만 명이 관람한 대작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1831년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발표한 동명 소설을 무대화한 작품이다. 배경은 15세기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한편에선 르네상스의 찬란한 기운이 퍼지고 있지만 봉건 귀족과 교회의 타락은 짙어지는 시기다. 금지된 욕망에 흔들리는 주교 '프롤로'와 대성당 종지기 '콰지모도', 근위대장 '페뷔스'가 매혹적인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에게 동시에 사랑에 빠지며 벌어지는 갈등과 비극적 운명을 그린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한 편의 시 같은 프랑스어 넘버가 50곡 넘게 이어진다는 점이다. 모든 대사를 노래로 대신하는 프랑스 뮤지컬 특유의 '성스루' 형식을 따른다. 특히 1막 '파멸의 길로 나를'에선 1998년 초연부터 무대에 오른 프롤로 역의 다니엘 라부아(75)가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폭발적인 성량과 에너지로 관객을 압도한다. 신앙과 욕망 사이에서 고뇌하던 그는 결국 에스메랄다를 향해 손을 뻗는데 마지막 가사를 읊조릴 때쯤 음흉하게 변조되는 목소리가 소름이 끼칠 정도다.
2022년에 이어 다시 한국 무대를 찾은 안젤로 델 베키오의 음색도 귓가를 사로잡는다. 장애를 안고 태어난 콰지모도 역을 맡은 그는 한쪽 어깨에 보형물을 넣은 3㎏짜리 의상을 입고 무대를 누비면서도 특유의 깊은 목소리로 콰지모도의 고독과 순수한 사랑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그가 에스메랄다를 향한 마음을 토해내는 넘버 '성당의 종들'에선 전문 댄서들의 활약도 돋보인다. 이들은 천장에 매달린 세 개의 대형 종에 올라타 온몸으로 종을 울리듯 격렬한 몸짓을 선보인다. 가장 큰 종은 무려 100kg에 달하지만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날렵하고 유연하다.
이 밖에도 댄서들은 아크로바틱, 브레이크 댄스 등 다양한 장르의 안무로 무대를 박진감 넘치고 드라마틱하게 채운다. 다른 뮤지컬처럼 장면 전환의 도구가 아니라 등장인물의 내면과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주체로 무대에 선다. 마르티노 뮐러 안무가는 "무대 전환 때 시간을 벌기 위해 댄서를 활용하는 게 아니라 댄서 자체로 이야기를 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과 사회의 억압, 시대의 혼란이 빚어낸 비극을 노래와 춤 속에서 되살린 수작이다. 위고가 쓴 원작 소설이 철거 위기에 몰린 노트르담 대성당을 되살려 오늘에 이르게 했듯 클래식 뮤지컬이 주는 감동 역시 수십년이 지나서도 울.
다른 내한 공연과 마찬가지로 출연 배우는 공연 당일 캐스팅보드를 통해 알 수 있다. 서울 공연이 끝나면 다음 달부터 대구, 부산, 세종 등 지역 투어를 이어간다.
허세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