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도 베스트셀러 작가로…급성장하는 POD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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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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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교보문고 시 분야 베스트셀러 3위는 차정은의 시집 <토마토 컵라면>이 차지했다. 나태주, 이병률, 박준 같은 쟁쟁한 시인들보다 앞선 판매 순위를 기록했다. 차정은 작가는 시인들조차 누구냐고 물어볼 정도로 새로운 이름이었다. 신춘문예 등 기존 등단 절차를 밟지 않은 그는 원고를 출판사로 보내는 대신에 주문형 출판(POD·Publish On Demand) 전문 업체 부크크를 통해 직접 책을 만들어 고등학생때 작가로 데뷔했다. <토마토 컵라면>은 SNS에서 입소문을 타며 2023년 3월 출간 이후 지금까지 약 5만5000부 판매됐다. 차 작가는 "아무래도 블루오션이었던 POD 시장에 빠르게 진입한 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차정은 작가의 시집 <토마토 컵라면> 스페셜 에디션. 주문형 출판(POD) 플랫폼 부크크에서 2023년 처음 출간된 후 인기를 끌자 지난해 4월 스페셜 에디션 표지로 다시 나왔다.

차정은 작가의 시집 <토마토 컵라면> 스페셜 에디션. 주문형 출판(POD) 플랫폼 부크크에서 2023년 처음 출간된 후 인기를 끌자 지난해 4월 스페셜 에디션 표지로 다시 나왔다.

차 작가처럼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는 대신에 POD 출판을 택하는 작가 지망생들이 늘고 있다. 9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이 서점에 판매 등록된 POD 서적은 2023년 5578종에서 2024년 9178종으로 늘었다. 올해는 8월까지만 8589종을 기록해 1만종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자사 POD 서비스 '바로출판'을 이용해 책을 출간한 작가 수는 올해 8월 기준으로 작년 전체보다 18.2% 늘어 시장이 급성장 중"이라고 설명했다. 부크크를 통해 출간한 POD 저자는 3만5000명이 넘는다.

POD는 맞춤형 소량 출판 서비스다. 미리 종이책을 만들어두지 않고 독자가 책을 주문한 만큼만 찍어 배송한다. 부크크, 교보문고의 바로출판, 유페이퍼 등 POD 전문 플랫폼을 이용하면 누구나 초기 비용 없이 작가로 데뷔할 수 있다.

POD의 가장 큰 강점은 초기 비용이나 재고 부담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통상 책을 내려면 출판사에 원고 보내(투고) 채택되길 기다리거나 '최소 1000부 구입' 같은 조건으로 출판 비용을 대는 '자비 출판' 방식을 택해야 했다. 직접 인쇄소를 섭외해 책을 만드는 '독립 출판' 방식도 있지만 제작비를 모두 감당해야 하는 데다가 대형 서점에 책을 입점시키기가 힘들다 보니 판매 저조로 재고 부담이 커진다.

최근 급성장 중인 POD은 다르다. 표지 디자인과 본문 편집을 저자가 하면 초기 비용이 0원이다. 한 권만 팔려도 책값의 약 15%을 인세로 받는다. 전자책의 경우 인세가 40~70% 수준으로 뛴다. 나머지는 POD 업체가 가져간다. 인터넷으로 책 주문이 들어와야 제작에 들어가기 때문에 재고 부담도 없다. 인쇄와 유통은 전문 업체가 대행해준다. 차 작가는 "첫 책을 출간할 때만 해도 판매를 위한 게 아니었다"며 "나만의 책을 만드는 게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의 목록) 중 하나였고, 초기 비용이 들지 않는 POD 출판이 가장 부담 없는 방식이었다"고 했다. 주문 이후 제작에 들어가 배송 받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단점이다.

자신의 취향껏 책을 만들 수 있다는 이유로 POD 출판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출판사에서 나온 한 권의 책은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 등 무수한 협업과 타협의 산물이다. POD는 저자가 혼자 책을 기획·제작한다. 학생, 주부, 은퇴한 중장년층 등 누구든 원고만 준비돼 있으면 직접 표지를 고르고 편집을 맡겨 전자책이나 종이책을 서점에 유통할 수 있다.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자신의 구상을 실현시켜줄 디자이너나 편집자를 찾고 싶다면 전문 플랫폼을 통해 구할 수 있다.

POD 시장은 작가 데뷔 무대 역할을 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는 출판사 웨일북에서 나왔는데, 앞서 저자 임홍택 씨가 POD 서비스를 통해 출간했던 <99세대의 역습>을 기반으로 집필한 것이다.

해외에서도 POD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 아마존은 2005년 POD 업체 '북서지'를 인수했다. 현재 아마존 킨들 스토어를 통해 전자책을 직접 출간하고 배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랜덤하우스 출판사 편집장 출신인 제이슨 엡스타인은 엔지니어 제프 마쉬와 함께 POD 전문 기계 '에스프레소 북 머신'을 2007년 개발하기도 했다. 마치 에스프레소 기계에서 커피를 뽑듯 짧은 시간에 원하는 책을 인쇄·제본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다.

다만 POD 활성화로 과거보다 쉽게 책을 낼 수 있게 된 반면 양서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POD의 특성상 출판사나 편집자의 선별·수정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신간은 쏟아지는데 독서율은 갈수록 떨어지는 건 현재 출판 시장의 모순이다. 한 출판사 대표는 "책의 내용보다 출판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거나 책을 강연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이력서로 사용하는 게 현실"이라며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많을 지경"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출판계가 POD를 주목하는 건 침체된 출판 시장의 돌파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김동혁 서일대 미디어출판학과 교수는 "전자책,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통한 정보 획득 등 읽기 행위가 다양해지는 것처럼 출판의 기능과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며 "출판의 문턱이 낮아지면 콘텐츠가 다변화되고 새로운 독자층을 유입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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