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관세전쟁 전략적 멈춤이지 종전 아냐
美, 동맹국에 더 정밀한 통상 협력 요구 중
한미 협상은 단순한 관세조정 넘는 분기점
‘공급망-기술-안보 파트너’를 목표 삼아야
최근 미중 간 90일 관세 ‘휴전’ 합의는 표면적으로는 긴장 완화의 신호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다음 국면을 준비하기 위한 일시 정지, 즉 ‘전략적 멈춤’이라고 할 수 있다. 고율의 상호관세는 미국 내 소비자 물가와 기업 비용을 끌어올렸고, 중국은 수출 둔화와 내수 불안으로 공장 폐쇄와 실업 문제에 직면했다.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고, 자국 경제마저 피로감을 호소하는 상황에서 양국은 휴전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실질적인 갈등 해소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미국은 여전히 반도체, 인공지능(AI), 배터리 등 전략 산업에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고, 중국 역시 산업 보조금과 기술패권 경쟁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관세만 잠시 접었을 뿐 기술 통제와 공급망 차단, 안보 프레임 아래에서의 경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 관세 휴전은 ‘종전’이 아니라 전열을 재정비하는 시간에 가깝다.
주목할 대목은 미국이 중국과의 갈등을 조절하면서도,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는 더욱 정밀한 통상 협력과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미 간 ‘2+2 고위급 통상협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에서 미국은 공급망 연계, 원산지 규정 강화, 시장 개방 등의 사안을 테이블에 올렸다. 특히 한국은 AI 반도체, 배터리, 조선업 등 전략 산업의 핵심 생산국으로, 미국의 글로벌 산업 정책에 있어 가장 긴밀한 협력 대상이다. 이 점은 협상의 기회인 동시에 이미 알려진 카드이기도 하다.다만 미국은 현재 영국과 중국을 제외하고도 18개국과 동시에 통상 이슈를 조율하고 있어, 각국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도 몇 주를 기다려야 협상 기회가 돌아오며, 그마저도 미국이 요구하는 의제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선제적으로 무엇을 제안하기보다는, 차분하게 미국 측 입장을 확인하고 분석한 뒤 대응 전략을 세우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다.
문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협상 전략이 단순한 관세 부과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은 통상, 기술, 안보, 심지어 환율까지 종합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특히 약달러 정책을 통해 자국 제조업을 보호하면서 동맹국에는 자국 통화 절상을 요구하는 이중 전략이 다시 등장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최근 한미 재무당국 간 비공식 환율 협의가 시작됐고, 시장은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원-달러 환율이 크게 요동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이번 통상 국면에서 반드시 챙겨야 할 것이 있다면, 첫째는 자동차, 철강 등 주요 품목에 대한 관세 부담 완화다. 이는 우리 산업의 직접적인 경쟁력과 수출 환경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중요한 협상 목표가 돼야 한다. 둘째는 좀 더 본질적인 목표, 즉 미국과의 통상 관계에서 한국이 단순한 수출국이 아니라 공급망과 기술, 안보를 공유하는 전략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는 일이다. 이미 우리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도입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이후 전기차·배터리 협력, 반도체 공급망 대응, 현지 생산과 고용 확대 등을 통해 미국에 성실히 협조해 왔다. 이 실적을 토대로 미국이 한국을 일방적 통상 대상이 아니라, 신뢰 기반의 공동 설계자로 인식하게 만들어야 한다.이번 협상은 단순한 관세 조정의 문제를 넘는다. 향후 미국의 산업·기술 전략 속에서 한국이 어떤 파트너로 자리매김할지, 그리고 글로벌 통상 질서 속에서 우리가 어떤 위상으로 기능할지를 가늠하는 분기점이다. 한미 양국이 서로를 얼마나 신뢰하고, 또 얼마나 책임 있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통상 관계는 단기 성과를 넘어 구조적인 관계로 진화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인내와 절제다. 정부와 기업, 전문가 집단이 머리를 맞대고 차근차근 대응해 나간다면, 한미 간에도 결국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협상 결과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고위급 당국자들조차 향후 전망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일단 국익 우선이라는 원칙하에 이 어지러운 시대를 돌파해 나갈 수 있는 끈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삼사일언(三思一言), 즉 충분히 숙고한 뒤 말하고 움직이는 태도가 요구된다. 조급한 성과보다 신중한 전략이 결국 우리에게 더 큰 통상 자산이 될 것이다.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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