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을 때, 네가 옆방에 있어 줘. 나 혼자라고 느끼지 않게.”
누군가 당신에게 죽음의 순간을 지켜줄 동반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합니다. 당신은 그 제안을 수락할 수 있겠습니까? 젊은 시절 친한 사이였지만,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의 부탁입니다.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인 그녀는 고통스러운 연명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품위 있게 죽어갈 권리를 원할 뿐입니다. 그 순간 당신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친구에 대한 연민일까요, 존엄사에 대한 윤리적 딜레마일까요, 혹은 죽음의 순간을 함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까요?
영화 <룸 넥스트 도어>(2024)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연출한 첫 영어 장편 영화입니다. 틸다 스윈튼과 줄리안 무어가 주연을 맡았고, 미국의 소설가 시그리드 누네즈가 쓴 소설 '어떻게 지내요(What Are You Going Through)'를 원작으로 합니다. 영화는 존엄사를 다루지만 그것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영화는 죽음의 여정에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따듯한 햇살과 새의 지저귐, 풍성한 빛으로 반짝이는 자연과 사물을 응시합니다. 삶을 구성하는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조각들을 비추기를 잊지 않습니다.
마사(틸다 스윈튼)와 잉그리드(줄리안 무어)는 같은 출판사에서 일하던 친구 사이였지만, 그들의 인생 역정은 달라집니다. 마사는 뉴욕타임스의 종군 기자로 일하며 전장을 누빕니다. 잉그리드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를 굳힙니다. 마사는 늘 전쟁의 현장을 누비며 죽음의 현실을 마주합니다. 모든 이들에게 그렇듯 죽음은 잉그리드에게 낯설고 불편한 무언가입니다. 하필 잉그리드가 최근 쓴 작품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다룹니다.
마사와 잉그리드는 오랜 시간을 뛰어넘어 예전의 막역한 사이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새로운 항암요법도 듣지 않고, 암은 이미 마사의 장기를 점령해 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심장은 여전히 건강하게 뛰고 있기에, 죽음은 더딘 고통의 방식으로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우리의 육신은 우리의 정신을 배신합니다. 질병에 걸린 것도, 죽음까지 이르는 길고 지난한 과정도 우리가 내린 선택이 아닙니다.
마사는 암과 싸워 이기라는 세속의 '긍정’을 거부합니다. 종군 기자인 마사는 죽음의 민낯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마사조차 감당하지 못할 두려움이 있습니다. 죽음이란 늘 완전한 고독을 동반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도 그 여정에 함께할 수 없지요. 하지만 마사는 그 고독을 오롯이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룸 넥스트 도어>라는 영화의 제목은 이런 마사의 고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자신이 죽을 때, 옆방에 있는 누군가의 온기를 느끼고 싶은 것이지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라도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기를 원합니다.
영화는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감독은 존엄사에 관한 묵직한 화두를 관객에게 던집니다. 그러나 <룸 넥스트 도어>는 단지 죽음만을 다룬 이야기가 아닙니다. 존엄사를 다루는 알모도바르 감독의 화법 역시 비장하거나 엄숙하지만은 않습니다.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존엄사에 관한 사회, 도덕적 문제 제기가 아닙니다. 감독은 오히려 삶의 윤리에 관해 천착합니다.
감독은 존엄사에 관한 '비인간적이고 불합리한’ 사회의 태도에 대해 비판합니다. 마사가 죽고 난 뒤 잉그리드를 심문하는 경찰의 태도는 야만적입니다. 잉그리드는 법적으로는 조력자, 사회적으로는 금기를 넘은 여성으로 낙인찍힙니다. 법과 제도, 종교라는 이름 아래 잉그리드는 어느새 악녀로 몰립니다. 잉그리드는 살인을 저지른 것도, 사회에 해악을 끼친 것도 아닙니다. 타인의 죽음을 존중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비난의 표적이 됩니다.
마사는 처음 계획과는 달리 잉그리드가 외출한 틈을 타 죽음을 맞이합니다. 감독은 죽음을 무겁고 음울하게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역설적일 정도로 찬란한 빛과 색으로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마사는 샛노란 정장을 차려입고 붉은 립스틱을 바릅니다. 잉그리드가 옆에 없어도 괜찮습니다. 햇볕, 바람, 신선한 공기, 세상과 '연결된 느낌’이 그녀와 함께하니까요. 마사가 죽음을 위해 마련한 집은 에드워드 호퍼의 <일광욕하는 사람들>의 모작이 걸려있습니다. 호퍼의 그림에 등장한 사람들은 햇볕 아래 괴리된 듯합니다. 마사는 그들과는 다릅니다. 햇볕 속에 녹아드는 느낌으로 선베드에 눕습니다. 마치 소풍을 떠나듯 무(無)의 세계에 동화합니다.
영화는 알모도바르의 전작들처럼 여성들의 연대, 공감, 우정에 대해 다룹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성들의 역할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마사와 잉그리드가 차례로 사귄 남성 데이미언은 비관주의자입니다. 데이미언은 잉그리드와 만나 환경문제와 악화해 가는 세계 정치 지형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데이미언은 거대 담론에만 매몰된 인물입니다. 알모도바르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감정과 감각에서 단절된 남성 캐릭터의 변주로 보입니다. 그는 이미 삶이 제공하는 즐거움을 잊었습니다. 죽음으로 이르는 과정에서도, 마사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며 잉그리드는 부드럽게 그에게 일깨워줍니다.
마사의 딸 미셸은 엘렉트라 콤플렉스에 시달립니다. 커리어를 위해 어머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마사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사의 죽음 이후에야 그들 모녀는 화해합니다. 마사와 미셸로 분해 1인 2역을 맡은 틸다 스윈튼은 같은 얼굴로 다른 영혼을 연기합니다. 미셸 역에 굳이 틸다 스윈턴을 기용한 감독의 의도는 선명합니다. 삶과 죽음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아갑니다.
어머니의 DNA를 물려받은 미셸이 그녀의 자리를 대신합니다. 어머니가 쓰던 침대와 어머니가 죽어간 선베드에 누운 미셸을 바라보는 잉그리드의 표정은 따뜻합니다. 마사를 꼭 닮은 딸에게서 친구를 잃은 상실감을 회복합니다. 삶은 그렇게 죽음이 떠나간 빈 곳을 채워갑니다. 삶의 배후에 죽음이 있다면, 죽음은 삶을 예비합니다.
영화는 2024년 제81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습니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이 세상에 깨끗하고 품위 있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기본적 권리라고 믿습니다. 이 영화는 두 여성에 대한 영화이고, 줄리안과 틸다에게 이 상을 돌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감독의 고국인 스페인에서는 2021년 3월부터 존엄사를 합법화했습니다. 또 감독은 "침울한 분위기 대신 빛과 생명력이 충만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연출 의도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영화 <룸 넥스트 도어>는 죽음에 관한 영화이지만, 실은 삶을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삶을 구성하는 미세한 온기, 햇살, 그리고 옆방에서 숨죽인 친구의 숨결이 죽음이라는 거대한 고독을 부드럽게 감싸 안습니다. 1960년생 동갑내기 여배우인 틸다 스윈튼과 줄리안 무어에 대한 알모도바르 감독의 찬사는 과장이 아닙니다. 틸다 스윈튼의 연기는 '삶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 남는 것’에 대해 사유하게 합니다. 줄리안 무어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며 그의 선택을 지지합니다. 아울러 죽음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공포마저 이겨냅니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며 누군가 그 순간을 애도합니다. 동시에 그 누군가는 자신의 마지막을 예비하고 성찰하는 방식으로 망자와 연대합니다. <룸 넥스트 도어>는 영화를 가득 채운 생동감 넘치는 색감처럼 그 사실을 따뜻하게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이수정 문화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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