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외부에서 휴대폰을 잠시 잃어버렸다가 찾은 게 두 번이나 됐다. 언젠가부터 집에 혼자 있다가 휴대폰을 어디에다 뒀는지 못 찾아 발을 동동 구르며 답답해하기도 여러 번. 그럴 때마다 PC를 켜고 카카오톡 앱에 접속해 가족 단톡방과 절친 단톡방에 급히 톡을 날린다. 수년 전에 집전화를 해지해서 그 방법밖에 없다.
“휴대폰이 집 안에서 사라졌어. 당장 내 폰으로 전화 좀 줘!” 운 좋으면 5분 이내로 누군가 전화를 한다. 그런데 익숙한 벨 소리가 화장실에서, 드레스룸에서, 서재의 책더미 사이에서, 심지어는 냉장고 안에서도 울린다. 뭐지? 내가 치매에 걸렸나? 더위를 먹었나?
젊었을 때 나는 기억력이 꽤 좋은 편이라 메모나 수첩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하긴 뇌도 노화를 하니 기억력 감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 그래서일까. 최근에 출간된 뇌인지과학자 정민환 교수의 <기억의 미래>라는 책의 제목에 호기심이 생겼다. 아니 미래의 내 기억에 걱정이 생겨서였는지도. 우리 뇌에서 기억을 관장하는 부위는 해마인데, 2007년에 이 해마가 기억을 저장할 뿐 아니라 축적된 그것을 재료로 삼아 미래를 시뮬레이션하고 창의력에까지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마커스 레이클 박사가 ‘디폴트 네트워크’라고 명명한 현상이다. 그는 외부 자극을 받아 정보를 처리하고 과제를 수행할 때보다 넋을 놓고 휴식을 취할 때 오히려 영상에서 뇌의 혈류가 더 증가해 활성화하는 사실을 발견했다. 요컨대 멍하니 쉬고 있을 때 백일몽과 상상에 빠지며 예상치 못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한다.
그 예로 아르키메데스가 어느 날 목욕탕에 들어가 넘치는 물을 보고 긴 기간 고민했던 물체의 부피를 측정하는 부력의 원리를 깨닫고 기쁨에 겨워 ‘유레카’라고 외치며 뛰쳐나온 일화는 유명하다. 내게도 생각해 보면 유레카의 순간이 있었다. 열 살쯤 됐을까. 학교에서 도형의 넓이를 배울 때였다. 사각형은 가로 곱하기 세로. 삼각형은 밑변 곱하기 높이 나누기 2. 학교에선 무조건 공식을 외워야 했다.
여름방학에 시골 할머니 집에서 지낼 때 마당에 있는 변소에서 나는 그 결정적 순간을 맞이했다. 변소는 판자를 잇댄 덧문인데, 환기창인지 위에 사각으로 뚫려 있었다. 햇빛이 그곳을 통과해서 회벽에 사각 그림자를 만들어냈는데 어느 날 빛의 기울기로 회벽의 그림자가 서서히 삼각형이 됐다. 그 순간 나는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삼각형의 넓이는 사각형의 넓이에 왜 2로 나누어야 하는지! 삼각형은 사각형의 반이기 때문이라는, 지금은 당연한 그 원리가 공식에 갇혀 있던 어린 내게는 진리의 깨달음처럼 여겨졌다. 속옷도 안 올리고 유레카라고 외치며 뛰쳐나가진 않았지만, 발견의 흥분은 강렬했다.
이런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영감을 맞이하는 창의적 휴식을 위해 저자는 3B, 즉 베드(bed), 배스(bath), 버스(bus)를 소개한다. 편안히 잠을 자거나 심신을 이완하는 목욕을 하거나 버스에 몸을 싣고 차창 밖의 풍경을 멍때리며 바라보는 상황이다. 요즘엔 한강에서 90분 동안 멍때리는 대회도 매년 개최한다. 물멍, 불멍이란 단어도 유행한다. 보통은 익숙한 길을 아무 생각 없이 산책하거나 밤낚시하며 찌를 바라볼 때, 명상할 때, 반신욕할 때 디폴트 네트워크 상태가 되지 않을까.
올여름 휴가철도 막바지다. 고물가 시대에 올해는 해외보다 제주도를 위시해 국내 여행을 택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휴가를 떠날 여유 없이 일만 하는 사람들도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틈틈이 자신만의 디폴트 네트워크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