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美 불법이민자 추방, 나쁜 결말”…국경차르 “바티칸도 성벽”

4 weeks ago 12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8일(현지 시간)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일반 청중들과 2025년 첫 교리 문답을 진행하고 있다. 바티칸=AP 뉴시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8일(현지 시간)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일반 청중들과 2025년 첫 교리 문답을 진행하고 있다. 바티칸=AP 뉴시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11일(현지 시간) 미국 가톨릭 주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규모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에서 불법 이민자 단속 등 반(反)이민 정책을 담당하는 핵심 인사인 톰 호먼 미국 ‘국경 차르(Border Czar)’는 곧바로 “교황은 가톨릭 교회에 충실하길 바란다”고 반박했다.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 공보실이 공개한 서한에서 모든 불법 이민자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한 뒤 “모든 인간의 동등한 존엄성이라는 진실이 아니라 힘에 기반한 조처를 하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며, 결국 나쁜 결말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취임 당일부터 대대적인 불법 이민자 추방에 나선 것을 두고 “미국의 중대한 위기”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한에서 “나는 가톨릭교회의 모든 신자에게 이민자와 난민 형제자매들을 차별하고 불필요한 고통을 초래하는 주장에 굴복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민자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해온 에드워드 바이젠버거 주교를 미시건주 디트로이트 대교구장에 임명했다. 바이젠버거는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논란이 된 남부 국경 이민가족분리정책에 참여한 국경 순찰대원들은 성찬식 참석을 거부당할 수 있다고 말한 인물이다.

2017년 5월 24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해 1월 제45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바티칸=AP 뉴시스

2017년 5월 24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해 1월 제45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바티칸=AP 뉴시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초의 중남미 출신 교황이다. 그는 트럼프 1기 때도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하고 엄격한 이민정책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6년 멕시코 순방에서 돌아오는 길에 당시 미국 공화당 경선 후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의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공약과 관련, “다리를 만들지 않고 벽만 세우려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어디에 있건 간에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2017년 교황청은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대해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를 잇는 다리를 만들어야지, 벽을 세워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선 프란치스코 교황의 비판을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호먼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는 교황에게 해줄 가혹한 말이 있다”며 “교황은 가톨릭 교회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평생 가톨릭 신자”라고 밝힌 호먼은 바티칸이 높은 성벽에 둘러쌓인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자기 자신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벽을 가졌지만, 우리는 미국 주변에 성벽을 쌓을 수 없다”고 말해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불법 이민자 추방 및 국경 단속 정책을 정당화했다.

호먼은 이어 “교황이 교회에 충실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국경 단속은 우리에게 맡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윤진 기자 k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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